법적 근거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전면 금지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병원과 유료방송사 등이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 논란이 되고 있다. 금융사는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허용하는 관련법 개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켜 논란을 피해 나갔다. 반면 온라인 쇼핑·포털·게임업체는 주민등록번호를 마이핀으로 대체하는 등 적극 대응해 대조적이었다. 업종별로 대응 상황이 나눠지면서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아 유예 기간 중에도 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0일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개인정보호법이 시행됐지만 대부분 병원은 전화나 인터넷 예약 시 환자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료방송사도 신규 회원 유치 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다. 법적 근거가 없는 금융회사 자동응답서비스(ARS)도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
정부는 법령 근거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 이용하거나 제공하면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그러나 내년 2월 6일까지 6개월간 계도기간을 운영하기로 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 수집해도 처벌을 유예했다.
이러한 점을 이용해 일부 업계에서는 버젓이 법적근거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은 병원이다. 대·중·소병원 대부분은 전화예약 시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있다. 인터넷예약 시에도 일부 대형병원과 상당수 중소형병원들은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도록 한다.
대형병원 관계자는 “전화 등 예약 시 이름만으로는 동일인이 너무 많아 주민등록번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일단은 계도기간까지는 환자 주민등록번호를 계속 수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소병원 관계자는 “내부 전산 인력도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예약시스템 수정에 대한 비용 부담이 커 추진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등록번호 수집 허용을 놓고 병원업계와 안전행정부 대립 골도 깊어졌다. 병원업계는 의료법에 명시된 주민등록번호 수집 허용 기준인 진료행위에 예약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초진환자 60%가 전화나 인터넷으로 진료 예약을 한다”며 “주민등록번호를 모르면 건강보험공단 조회나 의료보험 수급 대상자 파악·안내 등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안행부는 주민등록번호 수집 허용은 법적근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가 의료법에 명시된 주민등록번호 수집 허용 기준인 진료행위에 예약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법률근거가 없는 예약 시 주민등록번호 수집은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유료 방송사도 계도기간 동안은 주민등록번호를 그대로 수집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시스템 개편 계획을 마련하지 못했다. 계도기간 종료시점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은행법·자본시장법·여신전문금융업법·전자금융거래법·보험업법 등 20여종의 법을 개정, 주민등록번호 수집 허용 근거를 마련한 금융권은 큰 영향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다. 단, 법적 근거 대상이 아닌 ARS·공과금수납기·계좌잔액조회 등 단순 업무 시 수집되는 주민등록번호의 대체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민등록번호 요구가 허용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이에 대한 유권해석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반면 온라인 쇼핑·포털·게임업체는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주민등록번호 수집 관행을 개선,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에 따른 혼란은 없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 관계자는 “대형 온라인 쇼핑 기업은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해 이미 주민등록번호 수집 금지 관련 대책을 마무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안행부는 계도기간 이후에도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계속해서 이뤄지면 처벌할 계획이다.
업종별 개인정보호법 시행 기상도
자료:각 업계 종합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