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이 늦은밤 검술을 연마하다 이를 지켜본 홍 대감을 만나 눈물을 흘리며 마음 속 깊은 말을 꺼낸다. “대감마님의 아들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리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은 신분의 차별 이전에 인식을 억압하는 것이니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거꾸로, 아버지가 아닌데 아버지로 불러달라고 억지로 강제하는 일이 있다면 이 또한 길동에게 버금가는 억울한 울분이 될 것이다.
국내 지식재산권 출원은 2013년 특허 20만건을 포함해 총 43만건을 넘어섰다. 이 같은 출원 업무는 전기전자, 기계금속, 화학생명, 상표디자인을 전문 분야로 하는 변리사에 의해 수행된다. 아울러 특허법원에서 관할하는 특허 등의 무효, 취소, 권리범위에 관한 심결취소사건은 3년 연속 매년 1000건을 넘고 있다. 특허법원 사건 역시 10% 미만이 변호사에 의해 수행되고, 변리사 단독대리 65%를 포함해 90%이상을 변리사가 수행하고 있다.
‘변리사’는 기본적으로 특허청의 특허, 상표 출원과 특허법원의 소송을 대리하는 자다. 그러나 특허청 출원과 특허법원 소송을 실제로는 수행하지 않으면서 변리사 등록을 해놓은 사람이 많은 것이 국내 현실이다.
지난 5월 기준, 특허청에 변리사 등록을 한 사람은 7500명이고 이 중 4333명이 변리사시험을 치르지 않고 변호사 자격으로 변리사 등록을 한 사람이다. 현행 변리사 관련 법은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변리사 자격을 획득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특허청에 등록하는 변리사는 변리사회에 가입해야 하고 등록된 변리사는 연수교육(2년에 24시간)을 받도록 법적으로 규정돼 있다. 등록한 변리사가 변리사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특허청장이 징계할 수 있고 정해진 연수교육을 받지 않으면 과태료도 부과된다.
그런데 변호사 자격으로 변리사 등록을 한 4333명 중 변리사회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3253명으로 75%에 이르고 지난해 기준으로 변호사 출신 연수대상자 중 87%가 단 1시간의 연수교육도 받지 않았다. 빈번한 법 개정에 대해 정기적인 교육을 받지 않다보니 부실한 변리 서비스를 제공할 우려가 높다. 더욱이 앞선 75%와 87% 중 누구도 징계를 받거나 과태료가 부과된 사실이 없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특허나 상표와 같은 지식재산권은 권리를 신청하는 출원시점에 그 권리 범위가 고정된다. 고객이 소장한 지식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변리사는 향후 권리분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상정해 출원서를 작성하고 등록 가능성을 검토한다.
즉, 변리사는 특허 등의 침해문제를 여부에 두고 출원을 준비하기 때문에 민사법원의 특허침해소송에서도 변리사가 실질적으로 관여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출원업무를 수행한 경험도 없고 특허법, 디자인보호법, 상표법에 지식도 검증받은 적이 없으면서 오직 변호사 자격에 기대 변리사라 불러달라고 하는 상황은 아버지가 아닌데 아버지라 불러달라는 상황과 마찬가지다.
전문성과 윤리성, 공익성을 덕목으로 삼는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 공헌해온 바가 크며 그 사회적 역할에 우리 사회가 앞으로 기대하는 바도 여전히 크다. 그러나 이러한 덕목과 역할을 도외시하며 변리사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데도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변리사 이름을 쓰는 것은 이제 중지돼야 한다.
나아가 금전상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출원업무를 자격 없는 타인이 수행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역시 시급히 중지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비정상의 정상화 중 하나다. 홍길동이 나타나 “이제는 아버지가 아닌 자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느냐!”고 질타하기 전에 말이다.
이승룡 대한변리사회 기획이사 leesy@leemo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