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G20 대열에 합류한 선진국이자 한류 엔터테인먼트 강국이라는 나르시시즘(자기애착)에서 빠져나와 ‘그저 그런 세월호의 나라’라는 민낯을 보게 됐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앨빈 토플러가 외친 ‘제3의 물결’ 이론에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 미래 지향적인 사회였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혁명의 물결을 탔고, 제3의 물결인 정보화 혁명의 물결도 너무나 완벽하게 탔다. 그래서 우리는 그 파도타기의 기쁨에 도취됐다.
이제 ‘제4의 물결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라는 시대분석 개념에서 보면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벡의 사회론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와 ‘경제, 자연과학, 기술 분야에서 윤리가 그리고 그와 함께 철학과 문화, 정치가 새롭게 부활할 가능성을 찾아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울리히 벡의 주장에 일단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벡과 그가 보내는 희망 어린 가능성 뒤에 숨겨진 전제도 중요하다.
위험사회의 성찰이 가져오는 새로운 가능성은 윤리, 철학, 과학기술 관련 문화, 과학기술과 관련된 과학민주주의의 실현 등은 ‘위로부터의 실현’과 ‘아래로부터의 실현’을 구분해야 한다.
‘위’가 정책적 차원의 의미라면 ‘아래’는 시민적, 자율적 차원을 의미한다. 그런데 양자 모두 위험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행위 모델이나 시스템 모델 탐구보다 그 원인을 제공하는 것에 관한 근원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한,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과 상호이해는 불가피하다.
인문학과 과학의 상호 무지의 베일이 많이 벗겨졌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실정이다.
나는 이의 해답을 ‘인문·과학 생태공동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 공동체는 시민자율형, 지역형, 교육형 문제해결 모델로서 지역이 보유한 인문학적 자산과 과학기술로 대변되는 메가 시티의 ‘다리’를 잇는 작업이다.
도시를 뒷받침하는 산업 중산층 및 미래 세대들에게 인문적 사유와 가치의 중요성, 인간-삶-사회-과학-세계의 상호 관련성, 과학적 활동이 갖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 인문-예술-과학의 융합 가능성에 관해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일반 시민에게는 과학기술적 활동 속의 인문적 성격과 일상의 의식주 속에 숨겨진 인문-과학의 해독되지 않는 암호를 생동감 있게 풀어줄 수 있다.
과학과 인문의 ‘다리 잇기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단계별, 형식별, 방법적 차원에서 인문과 과학의 높은 장벽을 시민의 언어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로컬리티를 주제로 한 지역 인문-예술-정체성 구현, 과학과 인문의 만남과 융합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한 대안 모색, 민관 협약 아래 이뤄지는 과학-인문 융합인재 양성 프로그램, 과학-인문 포럼, 역사·문화·정신을 주제로 한 도시와 주변 인문체험코스 및 인문여행코스 개발 등이다.
제4의 물결은 자크 엘륄의 선지자적 예언처럼 ‘기술사회’에 대한 반동일 것이며 그것은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혁명적 물결일 것이라고 판단한다. 경제기술, 조직기술과 인간기술에 의해 제어되는 사회를 인간이 다시 되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인문·과학 생태공동체’를 통해 가능하다. 과학도시의 미래는 그것을 다시 인간이 되찾아 오는 것에 있다. 우리가 꾸는 꿈은 바로 ‘과학도시, 인문으로 색칠하다’이다.
박문식 한남대 교양융복합대학장 ms.park@hanna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