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업화를 비롯해 대학의 창업 기능 활성화가 창조경제의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대학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진기지로 거론했다. 신임 교육부 장관도 대학 특성화와 함께 창업 기능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대학 모두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양적 지원에서 질적 지원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고품질 창업을 위해 대학의 역할이 한층 더 확대됐다.
◇‘대학 창업’ 양적 지원 풍부하고 인프라 갖췄다
한국은 국가 전체 연구개발(R&D) 투자액 중 정부 비중이 큰 나라다. 정부는 한 해 R&D에만 18조원을 지원한다. 특히 우리나라 국가 R&D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대학은 단순히 고등교육기관 역할에만 머무를 수 없다.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일자리 창출, 서비스산업 강화 정책에도 대학은 주요 비중을 차지한다.
대학의 창업 기능 활성화를 위한 양적 지원도 활발하다. 대학 기술 사업화를 지원하는 정부 부처만 해도 교육부, 산업자원통상부, 미래창조과학부, 중소기업청에 지자체까지 가세해 각종 예산 및 지원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산학협력단, 창업선도대학, 산학협력대학, 창업보육센터, 기술이전조직(TLO), 기술지주회사 등 기술 사업화 관련 조직도 다양하다.
기술 사업화를 지원하는 외부 기관은 정책 단계별로 더욱 많다. △기술이전정책 △기술시장정책 △창업공간정책 △창업정책 △기업가정신교육까지 십여개를 훌쩍 넘는 기관들이 다각적 노력을 기울인다. 창업 공간 정책 현황에서도 수많은 지원제도들이 생겨나면서 일부 창업공간은 사실상 ‘공짜 입주’까지 가능하다. 액셀러레이터, 실험실창업, TIPS, 창업보육센터, 테크노파크, 벤처빌딩까지 등장했다. 벤처 경제 활성화에 물꼬가 될 자본 문제도 최근 성장 사다리펀드와 4조원 규모의 벤처 지원을 약속한 정부 계획, 벤처 펀드 결성이 늘어나면서 초기 창업을 위한 벤처 자금도 급증했다.
◇제자리걸음, 대학 기술지주회사
문제는 양적 지원이 몰리지만 고품질 창업 성공사례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기술사업화 건수는 늘었어도 기술료 수입은 오히려 정체다. 석·박사 고급인력이 70% 이상 포진해있으며, 우수 기술을 갖춘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풍부한 대학 창업환경 지원 인프라에서도 예외다.
정부의 칸막이 행정은 대학 기술지주회사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대학의 우수한 기술 기반으로 출발해 사업화, 곧 자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설립 근거법은 교육부지만, 재정지원을 산업부에서 받는다. 미래부는 대학이 아닌 출연연과 과기대 위주 기술지주회사만 지원한다. 총 31개 대학 기술지주회사가 지원받는 정부 예산이 30억원 수준인 반면에 2개 출연연·과기 특성화 기술지주회사가 받는 예산도 비슷한 규모다. 여기저기 흩어진 정부 지원은 대학 자체적인 협력을 가로막는 원인이다.
대학의 자세도 소극적이다. 단적으로 대학은 사업화를 위한 동기부여 시스템이 부족하다. 교육부의 LINC 사업 평가를 비롯해 대학 창업 생태계에 기술지주회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설립은 했지만, 판로개척이나 투자 등 실질적 지원에 인색하다. 설립 투자는 물론이고 전문직 직원을 두고 자회사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산학협력단 소속이므로 교수가 기술지주회사의 대표를 겸직한다. 지주사 대표가 교수의 순환보직이기 때문에 적어도 2년에 한 번씩 바뀌어야 한다. 대학 산학협력단의 의무출자비율(20%)을 유지해야 한다. 산학협력단 내 기술지주회사와 TLO 모두 기술 사업화가 목적이지만 사실상 경쟁 관계다.
한 대학 관계자는 “닭과 달걀의 문제”라며 “성공사례가 나와야 대학이 투자를 한다지만, 반대로 기업 입장은 전폭적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성공사례가 나오지 않는다고 반박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규제 걷어내고, 대학은 동기부여 시스템 만들어야
결국 기술사업화나 창업 활성화의 방향은 정부 주도가 아닌 대학 스스로 앞장서는 식으로 달라져야 한다. 이공계 교수에게 기술사업화로 인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자회사에도 선택과 집중을 하도록 해야 한다. 시장 중심의 기술 지주회사 설립 및 연구가 필요하다.
정부 역시 기술사업화를 비롯해 산학연 협력 관련 재정 지원 사업을 민간협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 사업성 있는 특허 발굴, 원천기술에 가까운 대학기술의 제품화 연구, 시제품 제작 등 사업화에 소요되는 실질 자금 지원도 확대가 요구된다. 아이디어 기반의 초기 기업보다 이미 창업해 죽음의 계곡을 넘기는 기업을 골라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에 발맞춰 최근 교육부는 민간기업이 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기술지주회사 의무 출자비율(20%) 완화 방침을 밝혔다. 산학협력촉진법 시행령을 개정해 기술을 개발한 교수가 기술지주회사 자회사의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 우수기술의 출자를 유도한다. 현재는 본인이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한 자회사에서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회사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경우 적정한 이익 보상이 어려웠다.
나아가 보유기술을 기술지주회사에 출자하고, R&BD 및 사업화에 기여한 실적이 대학·교수의 평가와 연동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대학과 기술 사업화 개선의 핵심으로 손꼽힌다. 황상순 인천대 기술지주회사 대표는 “대학기술 창업화의 가장 중요한 점은 대학의 규모나 연구자의 수가 아니라,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풍토”라고 강조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