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공간을 지배하는 자, 세상을 얻는다

[ET단상]공간을 지배하는 자, 세상을 얻는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언어학자는 인간의 생각 체계가 언어적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공간정보를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생각 체계 또한 공간적이다.

“너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있어”라는 흔한 표현에도 분명히 ‘내 마음속’ 이라는 공간적 관계가 존재한다. 어린 아기가 눈을 뜨고 손발을 움직이면서 가장 처음 배우는 것도 사물의 공간적인 체계다.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빌이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거리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공간과 사고체계를 연결시키는 매우 중요한 학습이다. 학교에서도 도형을 배우는 수학시간은 물론이고 체육시간과 미술시간에도 공간학습을 한다.

대학생에게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발표를 위한 슬라이드 작성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잘 도식화하는지다. 도식화는 기본적으로 추상적인 개념을 공간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어르신들이 치매 예방을 위한 여러 놀이에도 공간적 요소가 많다.

IT 발전 과정은 2000년 이전과 이후가 매우 다르다. 2000년 이전에는 IBM, 마이크로소프트,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컴퓨터 하드웨어나 운용체계를 생산했던 기업이 시장을 선도했다.

2000년 이후에는 야후를 시작으로 구글 등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이 IT 시장을 지배한다. 이들 기업이 넘치는 정보를 어떻게 체계적이고 직관적으로 검색하고 제공할 수 있는지 많은 고민을 한다. 그 결과 내놓은 것이 지도 서비스다.

야후는 이른바 ‘웹맵’ 서비스를 제일 먼저 상업화했다. 구글은 이를 이어받아 더욱 발전한 ‘구글맵’이라는 매우 친숙한 지도 서비스를 만들었다. 지도는 세상의 모든 위치와 공간적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보서비스 시장을 공간적 체계로 선점하려는 경쟁은 세계적으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공간적인 체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지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로봇 청소기가 방과 마루를 똘똘하게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려면 로봇이 이해할 수 있는 지도가 필요하다. 내비게이션으로 교통체증 지역을 피해 빠른 길을 안내 받고 싶으면 단순히 도로지도뿐 아니라 각 자동차가 어느 도로를 운행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조금 더 생각을 확대해 보자. 몸 안의 암세포가 어디로 전이됐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진단과 수술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의학에서도 신체 기관의 위치와 암세포 전이 상태를 표시하는 신체지도가 필요하다.

농구나 배구의 작전타임 동안 감독이 화이트보드에 자석을 움직여가며 설명하는 것도 작전지도다. 내가 최근 연구하는 분야 중 하나도 축구 선수의 움직임과 공의 위치를 분석해 축구전술에 공간적 체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마음속의 여러 요소를 공간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마음지도’도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 같은 분야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단언하건대 세상 모든 것은 공간에 존재하고 모든 인간의 사고는 공간적인 체계를 활용할 수 있다. 공간정보학은 인간의 사고를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하나의 커다란 학문체계이며 동시에 첨단 정보기술과 융합해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는 미래의 성장동력 산업이다.

오는 25일부터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4 스마트 국토 엑스포’는 공간정보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미리 엿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행사에서 공간을 지배하는 자가 어떻게 세상을 얻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기준 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부 교수 lik@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