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쩐의 전쟁`을 벗어나자

양휘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양휘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우리 영상산업계가 최근 두 가지 호재를 맞았다. 영화 ‘명량’이 첫 번째다. 개봉 12일 만에 관객 수 1000만명을 돌파하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괴물’이 보유했던 종전 기록을 넘어선 것은 물론이고 기세대로라면 1500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명량이 인기를 끌면서 신문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가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새삼 화제로 삼고 있다. 문화 콘텐츠가 지닌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두 번째는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콘서트·콘텐츠·컨벤션을 결합한 복합행사 ‘케이콘(KCON)’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 방송시장에 한류를 지속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열린 이 행사는 쇼 프로그램을 ‘초고화질(UHD)’로 제작하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놀라움을 줬다.

이처럼 고품질 영상 콘텐츠 제작과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는 시점에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 사업자와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원칙으로 하는 지상파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정부, 지상파, 위성방송, 케이블TV, 통신사, 제작사 대표 등이 결성한 차세대방송포럼(NexTV-F)이 미래 방송을 위한 로드맵을 구축하며 지혜를 모으고 있다.

얼마 전 포럼 관계자들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 일본 케이블TV업계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열리는 2016년을 목표로 UHD 상용서비스를 준비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4K보다 갑절 고화질인 8K방송은 2020년 도쿄올림픽부터 시범방송을 진행한다. 한 가지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은 일본 지상파는 주파수가 없어 2020년까지 UHD 상용화 계획을 유보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방송 시장은 지나치게 ‘쩐의 전쟁’에 빠져 있다는 느낌이다. 지상파 재송신 문제가 가장 대표적이다. 유료방송 가입자당 재송신료(CPS)를 받는 지상파는 브라질 월드컵에 이어 인천 아시안게임에 추가적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KT는 유료방송 시장 독과점 논란에, 위성방송은 DCS(접시 없는 위성방송) 이슈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모두가 돈에 관련된 주장만 한다. 상대적으로 방송의 공적 책임을 어떻게 부여하고 공익성을 강화할지에 관한 목소리는 작다. 국민에게 행복을 주고, 신뢰를 받는 방송·통신산업을 만들어야 하지만 업계는 이윤을 극대화하고 적자를 줄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이전투구를 일삼는 형국이다.

우리 방송업계에도 분명히 위계와 질서가 필요하다. 특히 KBS는 ‘쩐의 전쟁’을 벗어나 공영방송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 다른 방송사들은 상호 경쟁을 통해 드라마, 예능, 음악 등 방송콘텐츠가 한류를 타고 지속적으로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협력할 때다.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지상파가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보편적 시청권이 걸린 프로그램으로 별도 재송신료를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유발하는지 한 번쯤 자문해야 할 것이다. 소모적 싸움보다는 합리적으로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산업을 이끄는 것이 지상파가 방송계 맏형으로 담당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한다.

외주제작 생태계 조성, 방송프로그램 유통 지원체제 구축 등 지상파가 산업을 이끌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지상파의 역할이 정립 될 때 비로소 방송 산업의 질서가 잡히고, ‘명량’처럼 좋은 방송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지상파가 앞장서고, 유료방송이 뒤를 받치는 상생의 생태계를 만들어 우리 방송계가 국민행복시대를 열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양휘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hbyang@kc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