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 핵연료 처분 문제가 ‘발등에 불’이 됐다. 당장 2016년이면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사용후 핵연료가 포화 상황에 직면하지만 관련 정책이나 기술 개발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출범한 공론화위원회도 올해 말이면 활동이 끝나지만 아직까지 큰 성과가 없어 자칫 원전 가동이 멈추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관련기사 00면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소 포화 시점이 불과 2년 앞으로 다가왔다.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2019년 한빛원전, 2021년 한울원전 순으로 임시 저장소가 포화될 예정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으로 한울·월성·고리·한빛 4개 원자력발전 단지 내에 1만3254톤이 이미 발생했다. 가동 중인 23기 원전에서 매년 약 750톤씩 사용후 폐기 핵연료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정부는 저장 공간을 조밀하게 하고, 신규 원전으로 일부 이동하면 2024년까지 늦출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원전 호기 내 이동이나 임시저장소 증설은 관련 법규가 없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설령 기술적으로 포화시기를 늦춰도 10년 후면 더 이상 이 방법을 쓸 수 없다. 전문가들은 공론화와 부지 선정, 건설 등에 1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로 올해 경주에 설립한 중·저준위 방폐장은 부지 선정에만 19년이 걸렸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에 관리 방안을 도출하라고 위임했지만 위원회는 이제야 시동이 걸린 상태다. 당초 2월 시작해야 했지만 세월호 참사, 지방선거 등 각종 정치 이슈에 묻히면서 6월 말께 첫 의견 수렴 자리를 열었다. 공론화 활동 시한까지 5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이 기간 안에 국민 의견수렴과 평가·분석, 권고안 작성까지 끝내야 해 시간이 촉박하다.
순조롭게 공론화위원회에서 권고안을 작성해도 이를 뒷받침할 정책이나 기술이 없다. 사용후 핵연료 처분과 관련해서는 1988년에 중간저장 시설을 1997년까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마저도 두 차례에 걸쳐 건설 기한을 연기한 게 전부다. 사용후 핵연료를 원전에서 꺼내 저장시설로 옮기기 위한 방안이나 관련 규정도 전무하다.
수명이 다한 원전을 폐기하거나 사용후 핵연료를 처분하고 처리하는 기술도 없다. 처분 기술에 관한 연구는 2007년 이후 중단됐다. 당시 정부가 업무 중복을 이유로 관련 연구 기능을 원자력연구원에서 원자력환경공단으로 이관했기 때문이다. 연구원에서는 정부 지원 없이 자체 예산으로 진행해 시뮬레이션 수준 연구에 그쳤다.
이 때문에 연구를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었지만 처분 기술 진척도가 선진국의 60~70% 수준에 머문다. 처리를 위한 핵심 시설인 지하 연구 시설(URL)의 기술 수준은 30%에 불과하다. 연구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원자력연구원 28명에 환경공단 10명 남짓, 일부 대학교수와 석·박사 출신을 전부 모아도 50명 수준이다.
자금도 걸림돌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중간저장 시설 관련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관리 부담금 4036억원 정도가 전부다. 비용이 더 많이 수반되는 영구 처분시설 비용은 아예 고려하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 산업계에서는 “세계 원전 보유 5위국이라는 위상에 비춰볼 때 사용후 핵연료 문제는 걸음마 수준”이라며 “사용후 핵연료 저장에서 처분에 이르는 법률 제정과 기술 개발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관리부담금 납부현황(2009~2013년)>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