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디지털 러다이트

[신화수 칼럼]디지털 러다이트

출시를 앞둔 ‘아이폰6’에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 눈길이 쏠린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그렇다. 그런데 이번엔 아이폰6가 아닌 ‘폭스봇’이다.

폭스콘이 본격 투입한 조립생산 로봇이다. 팔만 있어 기존 공작기계에 가깝다. 일부 배터리 공정에 국한됐다. ‘첫 로봇생산 스마트폰’ 주장은 부풀려졌다. 그래도 애플이 105억달러나 쏟아 붓는 ‘공급망 생산시설 선진화’ 일환이다. 노동자의 잇단 자살과 분규로 세계적 비난을 받은 폭스콘이 치밀하게 준비한 일이다. 허투루 볼 수 없다.

문득 19세기 초 영국의 기계파괴(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떠오른다. 증기기관 발명 이후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각종 기계가 등장했다. 일감과 일자리를 잃은 수공업 숙련공들은 참다못해 떼로 기계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오죽했으면 6년간 그랬을까 싶지만 이들은 산업혁명 흐름을 전혀 읽지 못했다. 그래서 러다이트는 기술 혁신을 무작정 거부하는 무지함을 뜻한다. 몰락을 막아보자는 러다이트가 되레 몰락을 재촉했으니 아이러니다.

요즘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온갖 원가 혁신에 골몰한다. 한계에 다다르자 인력까지 손을 댄다. 아웃소싱을 넘어 폭스콘처럼 아예 인력을 로봇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몹쓸 짓이지만 언제든 나올 수순이다.

로봇뿐만 아니다. 기존 일자리를 뺏는 디지털 기술 혁신이 잇따라 나온다. 자동차 공유 스마트폰 앱은 택시 운전자를 위협한다. 자율주행차가 보편화하면 웬만한 직업 운전자 일자리를 뺏을 것이다. 배달 앱은 영세 전단지 인쇄업자를 힘들게 만든다. 원격진료, 온라인공개수업은 의사와 교수직을 위협한다. 스마트결제 확산은 금융업 근간을 흔든다. 200년 전 영국 숙련공이 곤혹 속에 마주한 상황과 다를 바 없다. ‘디지털 러다이트’가 막 등장할 참이다.

엄밀히 말해 기술 혁신은 일자리를 없앤다기보다 그 구조를 바꾼다. 일부 실업을 야기하나 전후방 효과로 일자리 총량을 더 늘린다. 산업혁명은 숙련공 일자리를 뺏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여성을 비롯한 비숙련공 일자리를 창출했다. 물론 어린이 노동, 노동 착취라는 부작용을 빚었다. 다행히 자본주의도 진화해 일부 개발 국가를 빼고 이제 거의 극복했다.

디지털혁명은 일자리 구조를 다시 질 위주로 개편한다. 단순 작업보다 부가가치 높고 창의적인 일을 요구한다. 일자리 창출이 미흡할지라도 기존 울타리에 안주할 뜻이 없는 이에게 새 기회를 준다. 이것마저 없다면 ‘디지털 러다이트’는 더 격렬하며, 후유증도 클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전문지식인 집단의 힘이 유독 센 우리나라다. 파리 택시기사나 실리콘밸리 주민이 시작한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디지털 러다이트를 이 전문지식인 집단이 먼저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와 교육계는 원격진료와 과학·SW 교육을 무작정 거부한다.

그러면 기자는? AP통신이 최근 기사 쓰는 로봇을 도입하자 이렇게 묻는 이가 많아졌다. 인정한다. 더 빨리, 더 많이 쓰는 기자로봇을 당해 낼 도리가 없다. 그런데 기자로봇이 더 지능화할지라도 넘볼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인적 네트워크, 통찰력, 창의적 기획력이다. ‘나만의 능력’을 키운다면 도망갈 구석이 분명 있다.

도도히 밀려든 물살이다. 거슬러 싸우다 진이 빠져 죽느니 그 물살을 타고 살아남는 것이 현명하다. 더 고달프며 비겁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