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파이스토스(Hephaestu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장장이, 장인, 예술가, 조각가, 불의 신이다.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인 그는 올림포스 신들을 위해 무기와 도구를 만들어주었다.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모자 페타소스와 날개 달린 샌들, 아프로디테의 허리띠, 아킬레우스의 무기, 헤라클레스의 추, 에로스의 활과 화살도 그가 만들어준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낸 곳도 그의 대장간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절름발이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위해 기계 장치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화적 상상이지만 최초의 자동체(automaton)다. 그는 두 가지를 만들었는데, 그 하나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삼발이 즉 ‘헤파이스토스의 트라이포드’로 이를 타고 올림포스에서 열리는 신들의 회합에 참석했다. 다른 하나는 인간처럼 지능을 갖춘 기계 몸종으로, 그는 일상적인 일을 처리하는데 그 여종의 도움을 받았다.
헤파이스토스가 발명한 자동체는 인류가 발명한 자동체의 두 가지 양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는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 장치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나 동물의 모사물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 장치의 역사는 아주 오래돼서 서기 1세기경부터 공기압이나 수압을 이용한 분수, 자동인형 극장, 움직이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이런 자동체는 17세기 이후 산업 기계의 등장에서 그 정점을 보여준다. 증기 엔진은 산업 혁명을 일으키며 이에 의존하는 기계 장치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넘어 인간을 예속시키는 단계까지 이른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이른바 주인과 노예 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한편 유기체의 모사물, 즉 시뮬라크라의 역사는 가짜 동물로 시작된다. 1738년 프랑스의 자크 드 보캉송이 만든 ‘기계 오리’는 진짜 오리처럼 음식물을 삼키고 분해하고 배설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 이후에는 인간의 모사물, 즉 안드로이드가 공공전시나 대중오락용으로 등장한다. 글쓰는 인형, 체스를 두는 인형, 피아노를 치는 인형에 이어 심지어 말하는 인형까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은 스스로 움직이고 인간이나 동물의 외양을 모방하기는 했지만 헤파이스토스의 여종처럼 지능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인간 지능의 모사, 즉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컴퓨터 장치의 등장으로 가능해졌다. 1673년 라이프니츠의 계산기(Calculus Rationator)는 인간 사고가 작동하는 형식 논리, 즉 규칙을 기계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컴퓨터의 아버지인 배비지의 동료 에이다 러브 레이스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인간 지능의 작동 방식을 기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앨런 튜링을 거쳐 현대 컴퓨팅 기술로 이어지는데, 인간의 사고를 프로그래밍이라는 형식 논리로 구현하려는 ‘고전적 인공 지능’으로 이어진다. 맞춤법 교정, 요약 등 소프트웨어의 자동화 기술이나 퀘이크 엔진과 같은 컴퓨터 게임의 기능, 데이터를 끌어모으는 웹 보트 등은 이런 유형에 속한다.
인간 지능은 형식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 과정 이상이다. 새로운 인간 지능 연구, 즉 연계주의 인공 지능은 인간 지능이 뉴런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네트워크 속에서 창발(emerge)한다고 본다.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는 자동체를 구현하려는 욕망은 신화에서 시작해 첨단의 인공 지능 연구로 이어지며 공명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우리와 똑같이 기계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