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급변하는 병원 경영환경, 연구중심병원 전환이 해법

최근 병원의 수익성 확보가 도마에 올랐다. 병원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거세게 제기된다. 병원업계는 이제 생존을 위해 수익이 필요하다고 되받아 친다. 머지않아 대형급 병원들도 도산하는 곳이 나온다는 말이 업계에서 흘러나온다. 여전히 지나친 진료비를 받고 있다고 비난받는 병원. 재정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병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이슈분석]급변하는 병원 경영환경, 연구중심병원 전환이 해법

병원 경영환경이 급변했다. 기존 진료수익에만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의료서비스를 받는 환자는 계속해서 병원비 인하를 요구한다. 정부는 하반기부터 4인 병상 건강보험제도 적용과 선택진료비 인하를 시행했다. 지속적으로 선택진료 비중을 축소할 계획이다. 저비용의 의료서비스에 충실하면서도 경영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해법으로 연구중심병원이 제시된다.

◇병원 보유특허 활용해 첨단 의료기술 상용화

정부가 연구중심병원 제도 도입을 처음 검토한 것은 지난 2005년이다. 지속적인 논의를 거쳐 2013년 연구중심병원 제도를 본격 도입했다. 정부는 제대로 된 연구중심병원을 육성하기 위해 부분적 연구개발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병원 전체 연구 환경을 갖춰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기준으로 가천대 길병원 등 10개병원을 지정했다. 정부의 연구중심병원 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시행한다. 하나는 연구중심병원 지정 사업이고 또 하나는 육성사업이다. 지정 사업은 연구중심병원 운영에 필요한 시설·장비·인력·네트워크·조직·제도를 갖췄는지 판단한다. 육성사업은 이후 지정된 병원 대상으로 연구와 개발, 사업화를 지원한다.

연구중심병원 활성화는 무엇보다 진료수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병원은 각종 규제 정책 시행에 따른 여파로 진료수익만으로는 정상적인 경영을 하기에 어려움을 겪자 새로운 수익 확보에 나섰다. 단기적 대안으로 해외환자 유치와 부대사업 확대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연구중심병원이 핵심이다.

병원이 보유한 각종 특허기술을 활용, 정보통신기술(ICT)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의료기술을 만든다. 대표적인 분야가 의료기기·줄기세포·의료로봇·의료IT 영역이다. 첨단 기술을 적용한 의료기술 상용화로 라이선스 수익 등을 확보한다. 미국·일본 등은 연구중심병원 제도가 활성화됐다. 미국 텍사스메디컬센터는 연구 수익이 전체 중 62%를 차지한다.

◇대학병원, 연구중심병원 환경 마련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연구중심병원 환경 마련이 활발하다.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된 가천대 길병원 등 지정병원을 비롯해 서울성모병원, 분당서울대병원, 경희대병원 등도 연구를 강화한다.

대표적인 병원은 가천대 길병원이다. 지난 3월 실시한 연구중심병원 1년 평가에서도 최고 등급을 받았다. 치매·뇌졸중·파킨슨병 등 노인성 뇌질환과 당뇨·비만·고지혈증 등 대사성 질환을 중점 연구한다. 이근 가천대길병원장은 “10년간 의료기술 연구에 집중 투자해 연구병원으로 자리매김 했다”며 “뇌과학연구원과 암당뇨연구원에 투자한 금액만도 수백억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가천대길병원은 사우디아라비아 킹파드 왕립병원에 뇌과학연구원 시스템을 그대로 이전하는 ‘트윈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암 조기진단용 자기공명영상(MRI) 조영제 기술을 대웅제약에 이전한 성과도 거뒀다.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바이오연구콤플렉스(BRC)도 설립했다. 길병원이 80억원을 투자하고 IBM 등 해외 연구소와 공동 연구 집적단지를 만들고 있다.

고려대안암병원도 적극적이다. 홍릉을 중심으로 한 서울 강북 의료바이오클러스터 구성을 추진한다. 김영훈 고대안암병원장은 “홍릉 지역에는 11개 대학과 연구소, 지식기관이 있다”며 “미국 MIT가 참여하는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를 모델로 의료바이오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에는 고려대기술지주회사 자회사로 의료기술지주회사도 설립했다.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 11월 글로벌임상시험센터를 오픈하고 서울대병원은 의생명연구원을 중개연구와 임상연구 두 축으로 재편했다. 삼성서울병원은 난치성 뇌종양 치료법 개발을 위한 연구기술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전한다.

연구중심병원에 지정되는 않았지만 서울성모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도 적극적으로 연구역량을 강화한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지방이전을 앞둔 한국토지주택공사 부지를 매입, 3000억원을 투입해 의료바이오 벤처 클러스트를 조성한다.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은 “2016년 조성되는 의료바이오 벤처 클러스터에는 의료기기·의료소프트웨어(SW)·의료서비스·바이오 등 벤처기업이 입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승기배 서울성모병원장은 “의료기기 개발 등 정부과제를 적극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예산집행 등 현실적 정책 시급

연구중심병원이 활성화 되려면 정부 정책이 보다 현실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예산’이다. 당초 올해 이뤄지기로 한 연구중심병원 지원 예산이 집행돼야 한다. 현재 기획재정부가 예산 배정을 하지 않은 상태다.

연구중심병원에 대한 체계적인 지정과 평가,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연구중심병원에 지정되지는 못했지만 지속적인 준비를 하는 병원에 대한 추가 지정도 필요하다. 대학병원 기술지주회사를 통해 연구결과가 사업화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최근 의료산업이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제시되면서 복지부 외에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정부부처가 연구중심병원 정책을 쏟아 낸다. 범정부 지원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한 병원장은 “부처별로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곳곳에서 연구중심병원 정책을 쏟아 내면 아무 성과도 만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예산을 모아 제대로 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

연구중심병원=진료로 축적된 지식 기반으로 첨단 의료기술을 개발, 사업화에 주력하는 병원을 말한다. 진료 중심의 일반병원과 달리 병원 내 인력 중 상당수가 연구업무를 수행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본격적으로 제도가 도입돼 10개 병원이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