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저가 결합상품 경쟁으로 차세대 유선망 투자 여력 `빨간불`

통신업계가 저가 유무선 결합상품 경쟁에 돌입하면서 ‘기가(GiGA) 인터넷’ 등 차세대 유선 인프라 투자 여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특히 결합상품이 무선 가입자 유치에 치우쳐 유선 상품이 사실상 공짜로 제공되는 등 유선 사업부문의 투자비용 회수가 난관에 직면했다.

차세대 유선망 투자가 단행되더라도 장기적으로 인터넷 총량제 등 요금제 개편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통신사 경영악화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차세대 유선 인프라를 갖추기 힘들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통신 3사는 최근 무선 2회선 결합 시 초고속인터넷 가격(약 2만원)만큼 할인을 제공하는 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일부 상품은 100Mbps 초고속인터넷을 기존 가격의 65%까지 낮췄다. 이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을 앞두고 보조금 대신 요금제로 경쟁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근호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 R&C 팀장은 “가입자 확보라는 차원에서 아직 재무적인 여력이 남아 있다는 전제 하에 유무선 결합할인 폭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공짜’를 넘어 ‘마이너스’ 전략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신업계 결합 할인 경쟁은 유선 프리미엄 상품으로 확대되는 양상이어서 기가인터넷 등 다음 단계 서비스 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됐다. 실제로 통신업계에서는 기가인터넷 등 차기 투자 발표가 잇따르지만 장비 발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투입할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통신 3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KT는 올해 예정한 2조7000억원 설비투자(CAPEX) 중 상반기 9199억원을 투자하는 데 그쳤다. SK텔레콤은 예정한 2조1000억원 중 7822억원을 집행하는 등 목표 절반 이하를 기록했다. KT는 최근 대규모 명예퇴직에 따른 수천억원대 회사채 발행까지 추진 중이다.

국내 통신장비 회사 사장은 “유선은 고사하고 무선 시장에서도 밖에서 보는 것만큼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며 “일부 통신사는 3밴드 캐리어 애그리게이션(CA) 인프라도 선언적인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글로벌 장비 업체 한 임원은 “통신사 유선 인프라에서 일부 병목현상이 발생한 지는 오래”라며 “약 1년간 투자 재원이 없어 해결하지 못하다 올해 기가 사업을 명목으로 부분적 해소를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선 부문 경쟁에만 치중하다 보니 인터넷 강국의 지위를 자처했던 유선 부문의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산발적으로 투자가 이어져도 기가인터넷 등 신규 서비스에서 거둘 수 있는 수익성은 명확하지 않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UHD, 헬스케어 등 관련 비즈니스는 아직 초기 단계에도 접어들지 못한 상태다.

뚜렷한 대안이 없는 가운데 자칫 경쟁상황에 밀려 과도한 비용만 짊어지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통신사 유선 상품 ‘공짜화’로 소비자 지불의향이 낮아져 케이블 등 관련 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KT 등은 이 같은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기가인터넷에서 정액제가 아닌 총량제 요금이 가능한지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 중이다.

정 팀장은 “이용자 지불의향이 낮아져 기가인터넷 등 차세대 서비스에 합당한 요금을 부과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런 경향이 장기화되면) 무선에서 늘어난 매출과 ARPU가 이를 커버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