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런(Milk Run)’은 우유회사가 매일 축산 농가를 돌며 원유를 수거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일반적으로 완성품을 만드는 제조사로 부품이 공급되는 것과 달리 제조사가 거래처를 돌면서 필요한 부품을 실시간으로 모으는 물류시스템을 의미한다. 부품 공급에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비용절감 효과가 크다. 필요한 양만 공급받을 수 있어 재고도 줄어든다. 유명 완성차 업체들이 우수한 품질의 부품을 효과적으로 얻기 위해 밀크런 방식을 활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창조경제 시대 미래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의료기기 산업에 밀크런 방식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의료기기 업체가 제조사가 되고 정부지원 정책과 출연연·시험기관·첨단복합단지·인허가기관 등이 거래처가 되는 일종의 ‘맞춤형 지원정책 플랜’이라고 할까.
우리나라 의료기기업체는 지난해 기준 2000여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적지 않지만 대다수가 영세한 중소기업이다. 다국적 기업에 비해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작고, 전문 인력은 부족하다.
의료기기는 인간 생명과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어 인허가 제도가 까다롭다. 최근 선진국들은 인증체계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이로 인해 의료기기 업계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정보기술(IT)과 의료기기가 융합된 모바일 헬스케어는 멕 휘트먼 미국 HP 최고경영자(CEO)가 새로운 메가트렌드로 꼽은 네 가지 중 하나인 모바일을 응용한 것이다. 만성질환자가 본인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모바일 헬스케어 도입으로 진료 시간을 20%가량 줄일 수 있다. 연간 4조3500억원에 달하는 교통비와 기회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는 당뇨병 환자의 건강관리를 위한 헬스케어 서비스와 클라우드 기반의 모바일 모니터링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융합을 가속화하면서 우수한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자 편의를 높이는 인체 친화적인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오는 2017년 230억달러에 이를 전망인 세계 모바일 헬스케어 시장에서 기술융합 가속화와 사회적 부가가치를 확보하는 핵심 방안은 협업이며, 주체는 전문 인력이다.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재미한인과학자학술대회(UKC)에 참석한 자리에서 국제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한인 과학자들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의료기기 업체들이 느끼는 최대 애로사항은 기술 개발과 인허가에 필요한 전문 인력 확보다. 전문 인력이야말로 의료기기업체(제조사)가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하는 원유인 셈이다.
중소기업의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출연연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거래처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단계별로 도움을 주는 상시 ‘전 주기 지원 매니저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표준·특허·인허가 등과 관련된 조기 은퇴 인력을 기업에 장기 멘토나 자문 등으로 파견하는 것도 방법이다.
밀크런 방식 도입으로 우리 의료기기 산업이 활성화되고 선순환 생태계가 구축되면 무엇보다 전문 인력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난제가 사라질 것이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창조적 아이디어와 새로운 시장 창출을 핵심으로 하는 창조경제도 실천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을 되새기며,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병원 의료서비스에 이어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많은 히든 챔피언들이 탄생할 날을 고대한다.
허영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의료기기 PD yhuh@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