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동차 자율 주행 핵심 부품 국산화를 위해 추진 중인 ‘자동차 전용도로 자율주행 핵심기술개발사업’을 두고 자동차 업계와 반도체 업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양대 업계의 분란이 고조되는 동시에 과제가 애초부터 껍데기만 국산화를 노린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자동차 전용도로 자율주행 핵심기술개발사업’을 두고 자동차 업계와 팹리스 업계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핵심 반도체는 이미 해외에서 개발돼 검증이 끝난 만큼 수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팹리스 업계는 부품 국산화가 목적이니 반도체도 국산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각각 펼치고 있다. 한 팹리스 업체 대표는 “핵심 부품을 국산화한다면서 반도체가 전부 외국 업체의 제품이면 결국 ‘허울뿐인 국산화’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국제 표준 규격을 준수, 양산·사용돼 검증된 제품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신뢰성·안전성이 최우선인 자동차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자동차 전용도로 자율주행 핵심기술개발사업은 오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총 사업비 2955억원을 투입하는 대형 연구개발(R&D) 사업이다. 10대 자율주행 핵심 부품으로 △레이더 기반 주행상황인지 모듈 △영상 기반 주행상황인지 모듈 △통합 운전자상태 인지기반 자율주행 개인화 모듈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사고기록장치(ADR) △차량대인프라(V2X) 통신 모듈 △자율주행용 도로·지형속성 정보를 포함한 디지털 맵 등을 개발한다.
최근 들어서야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와 몇몇 팹리스 업체가 산업부 주관 아래 사업에 참여해 10대 부품용 핵심 반도체 R&D 과제를 발굴 중이다. 그러나 국내 팹리스의 사업 연관성이 별로 없는데다 양측의 인식차가 불거지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자동차 업계 한 전문가는 “글로벌 업체들이 이미 개발해 충분한 검증을 거친 반도체를 사용하는 게 여러 면에서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종덕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스마트카PD는 “상보성금속산화(CMOS) 이미지센서(CIS) 등 이미 상용화한 제품을 포함시킬 예정”이라면서도 “다른 반도체까지 전면 국산화할지는 상세 기획 단계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업계가 국내 팹리스를 거부하고 있다”며 “산업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덧붙였다.
반도체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무지가 이런 사태를 촉발했다고 지적한다. 국산화를 내세우면서 정작 완제품의 반도체는 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포함되지 않는 사례가 대다수란 주장이다.
실제로 자동차 전용도로 자율주행 핵심기술사업도 기획 초안 작성 당시 KEIT·자동차부품연구원을 중심으로 현대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만도 등이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업계는 포함되지 않았다. 안기현 KSIA 연구개발지원본부장은 “지금까지 정부 주도 국산화 사업은 반도체에 대한 인식 없이 진행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며 “수요 기업의 의지가 없으니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팹리스 업체 대표는 “이번 사업도 마찬가지로 반도체 업계는 빠진 채 진행됐다”며 “일반적으로 ‘반도체까지 국산화할 필요가 있느냐’란 인식을 가지는 게 일반적인데 이래서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