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면 서서히 살아나던 디스플레이 시장 수요가 올해는 멈췄다. 월드컵 특수 등으로 2분기 출하량이 급증하면서 시장에 청신호가 켜졌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과거 디스플레이 시장 패턴대로라면 3분기에 상승세를 타야 하지만, 올해는 계절적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2분기 출하량 증가는 전체 시장 회복이라기보다 3분기 판매량 증가를 다소 앞당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중국의 에너지 보조금 정책 만료로 2분기 판매량이 급증했으나 이 효과가 하반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지난 10여년간 디스플레이 시장을 대표해 온 상저하고(上低下高) 현상은 깨지고 일시적인 이벤트에 의존하는 형태가 됐다.
시장조사 업체 NPD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9.7인치 이상 대면적 LCD 출하량은 지난 2분기 1억8100만대를 기록했으나 3분기에는 1억7500만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그동안 상저하고의 계절적 현상이 생긴 것은 디스플레이 수요를 촉발시키는 동인들이 하반기에 몰려 있었기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IT 시장이 상저하고를 그리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스마트폰·TV 등은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수요가 늘어나고 연말이 되면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유통 특수까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애플이나 삼성전자도 9월 경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상저하고는 뚜렷한 패턴이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통적인 시장 주기는 깨졌다. 계절적 효과는 사라지고 이벤트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
올해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가장 큰 변수는 중국 TV시장이다. 세계 최대 TV시장인 중국에서는 지난 3월 최고점을 찍은 후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올 상반기에는 노동절과 월드컵 등 스포츠 이벤트로 기대 이상의 실적을 누렸다. 대신 하반기 판매량은 저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주력 제품 역시 예측 불가다. 모니터와 노트북PC용 패널 수요는 꾸준히 감소했다. 이로 인해 삼성디스플레이와 대만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모니터와 노트북PC 패널을 주로 생산해온 5세대 라인을 스마트폰과 태블릿PC용 패널 등 모바일 디스플레이 라인으로 전환했다. 그러다보니 생산능력이 급감해 최근 몇달간 모니터 패널 가격은 부르는 것이 값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더욱이 모니터 수요가 한정돼 있다 보니 오히려 부가가치가 높은 고해상도 제품 수요가 늘었다. 생산량을 줄이지 않았던 LG디스플레이는 고부가가치 모니터·노트북PC 매출 덕을 톡톡히 봤다.
하반기에는 모바일 디스플레이 시장 전망도 불투명하다. 고가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게다가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가격 하락세도 겹쳐졌다. 고해상도 모바일 디스플레이용 저온폴리실리콘(LTPS) 생산 능력이 세계적으로 급증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태블릿PC 시장은 하반기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올 상반기에는 태블릿PC 시장 전체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5% 가량 성장했지만, 하반기에는 반대로 8~9% 정도 뒷걸음질칠 것으로 점쳐졌다.
스마트와치 등 웨어러블 시장이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개화 단계인데다 디스플레이 크기가 소형이어서 영향은 미미할 전망이다.
디스플레이 시장이 안개속이지만 성장을 견인할 기회는 있다. 대면적·고해상도 바람이 그것이다. 출하량은 감소하더라도 대면적화 추세에 따라 전체 출하 면적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고해상도를 위해 공정 시간이 길어져 생산 능력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도 라인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을 막는 요소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분기 출하면적 증가가 생산능력 증가를 상회하면서 가동률이 90% 후반대를 유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희연 LG디스플레이 상무는 지난 기업설명회에서 “지금으로선 시장 환경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투자 결정이 어렵다”며 “빠르게 생산 능력을 늘려갈 때와 시대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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