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열리는 콘퍼런스. 만찬이 열리면 모두 네트워킹을 하느라 바쁜데 한국 기자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한 귀퉁이에 모여 있었다. 어느 외국 콘퍼런스 취재를 가더라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영어도 능숙하지 않은데다 스탠딩 파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기자들에겐 그런 만찬은 고역이었다. 그나마 ‘콩글리시’가 통하는 일본 기자들과 어울리는 게 전부였다.
언젠가부터 이런 모습이 확 달라졌다. 한국 기자들의 영어 실력이 늘어서도, 갑자기 적극적이 돼서도 아니다. 외부의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한국 기자라고 하면 외신들조차 먼저 다가와 명함을 건넨다. 세계 1등을 달리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취재하면서 이 모습은 당연한 것이 됐다. 호가호위((狐假虎威)라도 좋다. 대한민국 산업을 취재하는 것만으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다.
세계 최고 산업을 취재하는 것은 기자로서도 보람찬 일이다. 산업을 일군 당사자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더하겠지만 기자들도 보람과 자부심을 함께 느낀다. 애정이 생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산업계 성장과 추락에 함께 웃고 운다.
그렇기에 걱정이 태산이다. 바뀌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시장 포화와 중국의 성장이라는 난제를 극복한답시고 자충수를 두는 모습까지 보인다. 단숨에 올라서기 위해 지키지 않았던 원칙이 어려움 앞에 더 드러난다. 한 글로벌 소재기업 인사는 “공들여 만든 신기술을 공급하면 카피를 조장한다”며 “더 이상 신제품을 한국 기업에 먼저 주지 않겠다”는 말까지 했다. 무리수를 두는 모습이 자꾸만 기자들의 레이더에 걸리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어려운 때일수록 정도가 답이다. 정상에 선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 정상을 유지하는 길은 한 가지다. 남보다 앞선 기술 개발과 미래를 위한 투자, 그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기자는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에 기뻐한다고들 여기지만 산업에 대한 애정도 깊다. 우리 제조업이 난관을 극복하고 또 다른 정상을 향해 나아가길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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