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이 한국영화 역사를 새로 썼다. 백척간두의 국가를 구하기 위해 10배나 많은 왜적을 물리친 그 감동은 4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자동차 업계가 처한 현실이 당시와 비슷하다면 과장일까? 현대·기아차가 세계 5위 업체로 발전한 것은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미래는 어떨까. 내수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은 어느덧 10%를 훌쩍 넘어섰다. 시장이 친환경 차량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이브리드카 부문에서 차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도요타는 엔저 효과까지 누리며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가 연비 오류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 해외 선두업체들은 꾸준히 연비를 높여가고 있다. 각종 지능형 자동차에서 자율주행에 이르는 기술이 진보하고 있는 가운데 애플, 구글까지 자동차 시장을 넘보고 있어 현실은 그야말로 ‘졸면 죽는다’는 속언에 딱 맞는 상황이다.
이에 맞서는 한국 자동차 업계의 연구개발비는 모두 합쳐도 도요타의 절반에 못 미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께 묘책을 여쭈어 본다면 “한국의 강점을 자동차 업계에서 살릴 수만 있다면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우선 한국 IT의 강점을 살려보자.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은 이미 증명된 경영전략이다. 삼성전자가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몰라봤다가 고전한 이야기는 좋은 반면교사다. 최근 다임러는 지능형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플랫폼 소프트웨어(SW)의 관리를 외부 업체에 맡기고 자신은 핵심기술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명량해전에서 우월한 수만 믿고 교만했던 구루시마는 결국 목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우리 수군은 군선 12척 이외에도 32척의 초선을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에서 SW의 비중과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질수록 IT·SW업계와 적극적인 협력을 도모해야 할 때다.
둘째, 우리나라는 높은 교육열의 강점을 가졌다. 독일에서는 학교와 업체가 공동 연구를 한 후 그 기술을 바탕으로 강소기업이 탄생하는 사례가 많다. 일례로 피터 글리바 박사는 대학에서 자동차 SW의 타이밍 분석에 대해 콘티넨털과 공동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3년 회사를 설립해 업계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 자동차 업체들도 상용화와 연결되는 실질적인 연구과제를 학교에 위탁하고 기술개발에 참여시켜야 한다.
셋째, 제품 개발과 SW 개발에 좀더 적극적으로 최신 기술들을 활용해야 한다. 자동차 SW는 전통적인 코딩 방식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양이 커지고 복잡해졌다. 치명적인 오작동을 방지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품질 확보는 더욱 어려워졌다. 따라서 SW 엔지니어링, 모델 및 시뮬레이션 기반 개발 및 검증 방법 등의 최신 개발 방법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아우디는 파워트레인 부서에서만 150여대의 HILS(Hardware-in-the Loop Simulation)장비를 운용 중이고 BMW나 다임러 같은 선진업체는 수십대씩 그리고 중국 업체도 보유하고 있는 가상 시뮬레이션 차량시스템(Virtual Vehicle)이 국내에는 없는 실정이다. 선진 개발 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기술을 간접적으로 배워 개발 효율을 제고하는 지름길이다.
한국 자동차 업계가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과거에 안주해 미래를 도모하지 못하면 퇴락하는 전설이 될 뿐이다. 협력과 분발로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는 명량해전을 꿈꾸어 본다.
우준석 MDS테크놀로지 상무 joonseok@mdste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