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2기 경제팀의 화두는 경제 살리기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경기 회복세가 미약해져 자칫 장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 정부는 경기부양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정부 출범 때 강조했던 ‘경제민주화’ 의지가 퇴색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전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는 양립할 수 있고 양립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마땅한 ‘액션’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경제팀 초점은 ‘경기 부양’
지난 7월 최 부총리 취임 후 정부가 내놓은 세 가지 주요 계획은 2기 경제팀의 초점이 경기 부양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큰 줄기를 다룬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에서 정부는 경기 회복세 지속을 확신할 수 없으며, 지금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면 축소균형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저성장·저물가·자산시장부진 등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과감한 정책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경제정책 방향의 핵심은 ‘41조원+α’의 정책 패키지 추진으로, 새롭게 3대 세제(배당소득증대세제, 기업소득환류세제, 근로소득증대세제)를 도입했다. 이외에도 비정규직 처우 개선, 여성과 청년 고용 활성화를 위한 대책 등을 담았다.
이어 발표한 세법개정안도 경제정책 방향을 뒷받침해 경기 부양에 방점을 뒀다. 3대 세제를 구체화 하고, 가업상속공제 대상·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세법 개정으로 정부 국세 수입은 5680억원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유망서비스산업 육성 중심 투자활성화 대책’도 맥락을 같이한다. 정부는 내년 중소기업 제품, 농수산물 전용 공영 홈쇼핑 채널을 신설하는 한편 2017년까지 소프트웨어(SW) 벤처 1800개를 창업하기로 했다. 보건의료용어 국가표준을 제작해 의료기관 간 정보 교류를 활성화하고, 특별법을 제정해 해외환자 유치에 나설 방침이다.
◇경제민주화 의지는 후퇴?
최 부총리가 취임 한 달 만에 굵직한 대책들을 내놓으면서 경제활성화 기대가 높아졌다. 8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5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특히 주택시장은 ‘최경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비록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지난 4월(82) 이후 계속 떨어져 8월 72를 기록했지만 민간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경제심리지수(ESI)는 전월보다 2포인트 오른 94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가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추며 상대적으로 경제민주화 의지는 퇴색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연초 대대적인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할 때에도 이미 비슷한 비판이 제기됐다. 경제활성화가 지나치게 강조되며 경제민주화는 발 디딜 곳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정책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기존 발표를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쳤다. 제도화 미완료 11개 과제의 입법을 추진하고, 새롭게 도입된 제도의 작동 실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해 공개한다는 정도다. 그나마 나머지 두 개 정책에서는 경제민주화가 거론되지 않았다.
경제개혁연대의 자매기관인 경제개혁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최근 6개월 동안 박근혜정부가 공약으로 제시했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한 건도 추가 입법되지 않았다며 공약 이행 평가결과를 100점 만점에 26.5점으로 매겼다. 경제개혁연대는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내세우면서 경제민주화 입법 추진이 저조했다고 분석했다.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 상생 가능할까
하지만 반대로 올해가 경제민주화 원년이 될 것이며, 경제활성화와 양립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게 부족해 보일 뿐 당초 계획대로 정책은 차근차근 추진되고 있으며, 경기 부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작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율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전속고발제 폐지 △부당하도급 3배 손배제 확대 △중기조합에 납품단가조정협의권 부여 △불공정 하도급특약 금지 △가맹점주 권리강화 △표시광고법상 동의의결제 도입 등 8개 핵심 경제민주화 법 개정을 완료하고 올해 본격 적용을 시작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작년 8개 핵심 법안이 통과한 것은 상당한 성과”라며 “지난해가 기틀을 마련하는 시기였다면 올해는 현장에 실제 적용하는 사실상 경제민주화의 원년”이라고 말했다.
현장 인식과 분위기도 차츰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다. 공정위가 작년 하도급·가맹·유통 분야 경제민주화 입법으로 새로 도입한 제도의 현장 정착 현황을 점검한 결과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당특약을 금지하는 제도 도입 후 불공정 관행을 경험한 기업이 종전 194개에서 119개로 줄었다. 계약 중도 해지 시 과도한 위약금 부과 금지 규정을 신설한 후 가맹본부의 평균 위약금 부과금액은 1211만원에서 806만원으로 낮아졌다.
업계는 나머지 입법 과제를 차질 없이 완료하고 지속적으로 점검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굵직한 입법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데다 이미 개정된 법도 현장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는 평가다. 또 엄격한 법 집행이 결국 공정거래 정착과 경제활성화로 이어지는 만큼 공정위가 감시 인력과 활동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500명가량의 공정위 직원 중 일부가 현장 감시에 투입되는 만큼 업무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인원을 늘리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