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창에 각기 다른 문서의 세계를 보여주는 다중 윈도(multiple windows). 현대적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의 상징과도 같은 다중 윈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960년대 중반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스탠퍼드대에서 인간 증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하이퍼텍스트, 관점 컨트롤, 온라인 시스템 등과 더불어 다중 윈도를 개발했으니 50여년이 된 셈이다.
그 이후 엥겔바트의 다중 윈도는 1970년대 후반 제록스사의 팔로알토연구소로 이어져 알토와 스타라는 미니컴퓨터에 구현됐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이 시스템을 구입해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한 후 1984년 매킨토시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컴퓨터를 통해 대중화됐다. 그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도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채택하면서 현재와 같은 ‘인터페이스 문화’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다중 윈도는 컴퓨터가 수행하는 다양한 작업을 하나의 스크린 위에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개발됐다. 스크린 크기가 제한돼 있다 보니 당연히 화면을 분할해야 하지만 하나의 층위로 나누는 타일링 방식은 개별 윈도의 창을 작게 만들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쓰는 것처럼 윈도를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는 컴퓨터 영역만의 일은 아니다. 책상에서 여러 문서를 읽게 될 때 우리는 문서들을 겹쳐 놓고 필요에 따라 밑에 있는 문서를 위로 올려 본다. 벽면과 같이 공간이 넓어지면 중첩시키지 않아도 되지만, 컴퓨터 스크린을 포함해 시선의 대상이 되는 표면이 제한적인 경우에는 중첩하더라도 화면 분할은 필연적인 것 같다.
고대 이집트에서 얼굴 화장용 거울인 팔레트, 그리고 왕의 업적을 새긴 비명이나 첨탑의 표면은 다중 윈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컴퓨터 윈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원전 3100년경 이집트 제1왕조의 파라오인 나르메르(Narmer)의 무덤에서 발견된 팔레트는 거울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고 부장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앞뒤에 그림 문자로 왕이 신의 아들이며 백성을 보호하고 적을 물리치는 존재임을 알리고 있다. 이 팔레트 뒷면에는 세 영역이 수평선으로 구분돼 있다. 맨 위는 신의 영역, 가운데는 왕의 영역, 맨 아래는 적의 영역이다.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왕의 영역 넓이가 가장 넓은데, 여기에 왕을 상징하는 매, 파피루스 줄기, 끌 등이 부조로 조각돼 있다. 이런 표면 분할은 각기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중 윈도에 다름 아니다.
이런 양식은 제12왕조 네누르세르트 3세 시대의 유적 이케르노프레트의 비석에서도 발견된다. 다양한 윈도로 구성된 이 비석에는 신의 칙령, 칙령을 수행한 왕의 업적, 신에게 바치는 제사 의식 등이 표현돼 있다. 특기할 만 한 점은 문자의 발전으로 칙령이나 수행 업적은 상형문자로 기록된 반면 제사 의식에 관한 내용은 그림문자로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그림문자는 리터러시를 갖추지 못한 일반인도 읽을 수 있지만 상형문자는 엘리트만이 해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향하는 수용자가 다르다.
기원전 1457년 이집트 제18왕조 하트셉수트(Hatshepsut) 여왕을 위해 만들어진 높이 28.58m의 첨탑, 즉 오벨리스크 표면은 다중 윈도와 관련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파라오의 아들인 왕은 신처럼 남성이어야 하는데 여성이 왕위를 계승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하트셉수트는 다중 윈도를 통해 이를 해결했다. 일반 백성도 볼 수 있는 그림문자의 윈도에서는 여왕을 남성처럼 묘사해 가슴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엘리트만 볼 수 있는 윈도는 상형문자로 왕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윈도에 각기 다른 문자로 각기 다른 내용을 기술한 것이다. 마치 컴퓨터 다중 윈도처럼.
묘사하는 세계의 다중성을 각기 다른 언어로 표상하는 다중 윈도는 이처럼 인류의 역사를 이어오며 면면히 공명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표상의 세계를 살아온 것이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