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가 사랑한 스타트업 with 이은우]<47>타임머신 전략으로 성공한 `크레온`

‘크레온(Kreon)’은 한국인 창업자가 설립한 인도네시아 게임 퍼블리싱 회사다. 인도네시아 게임 시장의 75%를 점유한 압도적 1위 기업이다. 크레온이 퍼블리싱하는 ‘포인트 블랭크’는 동시접속자 25만명의 인도네시아 국민게임이다. 포인트 블랭크 외에 드레곤 네스트, 로스트사가 등 한국 게임을 인도네시아에 선보여 성공을 거두고 있다. 현지 직원은 150명 수준으로 창업자를 비롯한 경영진은 한국인이 맡고 있다.

크레온이 인도네시아에서 운영하는 모바일 게임플랫폼 `겜스토어`.<사진:홈페이지>
크레온이 인도네시아에서 운영하는 모바일 게임플랫폼 `겜스토어`.<사진:홈페이지>

-정진욱(콘텐츠대학부 기자)=한국 창업자가 만든 인도네시아기업이라니 흥미롭다. 크레온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이은우(소프트뱅크벤처스 상무)=처음부터 회사가 잘된 것은 아니다. 힘든 시기를 겪었고 절치부심하다 포인트 블랭크가 대박을 터뜨리며 자리 잡았다. 포인트 블랭크도 사실 국내에서는 잘된 게임은 아니었는데 크레온을 만나 반전을 만들었다. 현재 동남아 게임 시장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가레나가 전체를 석권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만큼은 크레온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진욱=크레온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은우=크레온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할 당시 현지 온라인게임 시장은 성숙기에 들어가 후발 주자가 자리 잡기 힘든 국내와 달리 이제 막 개화하는 시기였다. 시장 초기 뚜렷한 승자가 없는 무주공산에 크레온이 깃발을 꽂았다. 타임머신 전략이 주효했다. 선진 시장의 앞선 기술과 노하우를 후발 시장에 이식했다. 창업자 모두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경험을 쌓았지만 국내에선 별다른 경쟁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로 무대를 옮긴 순간 한국에서의 경험은 크레온만의 강점이 됐다. 자신의 강점이 독특함으로 연결되는 곳에서 기회를 찾았다는 점이 스타트업에 시사점을 준다.

-정진욱=크레온은 인도네시아에서 창업했다. 왜 인도네시아인가.

▲이은우=인도네시아는 매력적으로 성장하는 시장이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이 한국보다 낮지만 10년 내 우리를 추월할 유일한 국가로 꼽힌다. 인구 2억5000만명에 중산층이 성장하며 소비시장도 커진다. 스마트폰 보급률도 빠르게 늘고 있다. 잠재력 큰 거대시장으로 국내 창업자가 타임머신 전략을 펼치기 좋은 곳이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나,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 모두 앞선 경험과 기술 트렌드를 먼저 배워 후발 시장에 적용하는 식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전에는 한국이 경험을 수입하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수출하는 입장이다. 한국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는 분야가 많다고 본다.

-정진욱=단순히 경험을 갖고 인도네시아 시장에 갔다는 것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닐 거다. 크레온의 다른 강점은 무엇인가.

▲이은우=퍼블리싱기업의 경쟁력은 좋은 게임을 확보하는 거다. 이 측면에서도 크레온이 유리했다. 국내에 많은 유망 게임개발사를 설득하는 일은 아무래도 한국인 창업자가 유리하다. 포인트 블랭크처럼 인기 한국 게임 다수를 현지에 유통하며 경쟁력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다른 요소는 뛰어난 실행력이다. 반드시 되게 하는 실행력이 ‘안 되면 말고’식의 문화에 젖은 인도네시아에서 확실한 차별점을 만들었다. 게임이 인기를 끌면 동시접속자 증가로 서버 증설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에선 이 당연한 작업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 현지 게임 모두 같은 상황을 겪는다. 서버 증설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사용자가 불편을 겪고 서비스를 떠나지만 어느 인도네시아 게임사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크레온은 직접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원활한 서비스 운영에 주력했다. 개발팀이 한국에 체류하며 필요한 모든 작업을 원하는 시간 내에 해낸다.

한국식 강점을 유지하는 속에서도 현지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주요 경영진만 한국인일 뿐 나머지 직원은 모두 현지인이다. 현지 문화를 파악하고 게임에 적극 반영했다. 한국 버전에는 없는 아이템 1일 판매 등을 도입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정진욱=한국에서 얻은 노하우를 다른 나라에서 펼치는 것도 좋지만 해당 국가 경험도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 같다. 너무 한정된 사람만 대상이 되는 건 아닌가.

▲이은우=당연히 한국과 특정 국가 경험을 모두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희소성과 경쟁력이 생긴다. 진출 국가에 네트워크가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의미 없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현지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당장이 아니라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현지 경험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네트워크 없이 2~3년 서비스를 가다듬는 것보다 나를 ‘유니크’하게 만들어 줄 사람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정진욱=크레온은 온라인게임을 가지고 현지에 진출했다.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를 추천한다면.

▲이은우=인도네시아에 한정해 말한다면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한국의 경험을 살릴 수 있다. 인도네시아 시장은 아직도 광고를 배너로 판다. ‘XX사이트 배너 노출 한 달에 얼마’식이다. 광고 성격에 맞는 효율 좋은 사이트 연결은 물론이고 광고주가 원하는 기본적인 성과 측정도 없다. 최근 한국의 온라인 광고 상품을 현지에 소개했는데 반응이 대단했다. 반응을 확인하고 실제로 한 국내 벤처는 현지 진출 준비에 들어갔다.

-정진욱=한국 기업이 인도네시아 등 타임머신 전략을 펼 수 있는 곳에 진출할 때 주의할 점은.

▲이은우=동남아 지역은 전반적으로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되는 게 안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 내 결제시스템 도입이 힘들다. 인도네시아는 은행계좌 없는 사람이 인구의 절반이다. 현지 게임사는 PC방에서 별도 바우처 판매로 돈을 번다. 동남아 지역은 아직 가처분소득이 낮다. 게임이라면 돈을 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너무 큰 성과 차이가 나면 안 된다. 유통망 관리와 게임 밸런싱 등 현지 사정에 맞는 대응이 중요하다.

-정진욱=그동안 많은 국내 업체가 미국 등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접근법을 취했다. 이런 식의 타임머신 전략은 이제 의미 없나.

▲이은우=여전히 좋은 전략 중 하나다. 중요한 건 아이템만이 아니라 현지 경험까지 가지고 와야 한다는 거다. 통찰력과 경험을 가지고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보다 동남아 등이 나은 이유는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중산층이 커지며 전에 없던 시장이 생긴다. 현지 네트워크를 만들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렵지 않게 성공할 방법은 없다.

-정진욱=크레온 같은 스타트업에 투자할 의향은.

▲이은우=단순 퍼블리셔는 곤란하다. 사업자의 경험과 현지 이해도 및 네트워크가 결합돼야 한다. 타임머신 전략이 통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투자대상이다.

-정진욱=크레온이 시사하는 것은.

▲이은우=‘내가 가진 강점이 희소성으로 연결되는 시장을 주목하자’다.


[표]이은우 상무가 평가한 크레온

[표]크레온 현황

[고수가 사랑한 스타트업 with 이은우]<47>타임머신 전략으로 성공한 `크레온`

[고수가 사랑한 스타트업 with 이은우]<47>타임머신 전략으로 성공한 `크레온`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