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신데렐라 익스프레스

[기자수첩]신데렐라 익스프레스

매주 일요일 밤 9시가 되면 일본 도쿄역 신칸센 승강장은 오사카로 연인을 떠나보내는 인파로 붐빈다. 자정이 되기 15분 전 신오사카역에 도착하는 9시 20분 도쿄발 도카이도 신칸센 막차 ‘신데렐라 익스프레스’ 때문이다. 이 열차는 모두를 동화 속 신데렐라와 왕자로 만드는 ‘마법의 열차’다.

후지TV의 1991년 드라마 ‘도쿄러브스토리’는 지금도 회자되는 ‘트렌디 드라마’의 시초이자 바이블이다. 화려했던 버블경제 시기 펼쳐진 스물네살 청춘남녀의 자유연애 이야기로, 각국에서 다양한 파생작과 함께 ‘트렌디 드라마’라는 새 장르를 만들었다.

‘신데렐라 익스프레스’는 생활에서 감동을 찾아낸 대표적 마케팅 성공 사례다. 오사카행 막차는 1964년 신칸센 개통 때부터 있었다. 물론 스물네살 청춘남녀의 자유연애도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일상을 재발견해 오사카로 떠나는 애인을 ‘신데렐라’로, 우리네 청춘들을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포장한 것이다. ‘일상’을 재발견한 JR도카이와 후지TV는 큰 비용 없이 엄청난 수익도 챙겼다.

국제가전전시회 IFA 개막을 앞두고 기자들의 메일함에는 전자업계에서 보내온 메일이 가득하다. 시장 상황이 어렵다보니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한 노력이 가득하다. 삼성은 유럽의 유명 디자이너들을 동원해 ‘프리미엄 아트 가전’을, LG도 기술력을 한데 모은 ‘차세대 가전’을 내놓을 예정이다.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억대에 달하는 ‘명품’ 행렬이다.

가전은 ‘집에서 쓰는 전자제품’이다. 그 ‘집’에 사는 소비자 대다수는 수백만원의 초고화질(UHD) TV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고민한다. 생전 이름 한번 들어보지 못한 디자이너 이름에 덥석 전자제품을 구입할리 만무하다. 제 아무리 이목을 끌어야한다지만 ‘생활’ 없는 가전 앞에 소비자는 갸우뚱한다.

가전에 ‘생활의 감동’을 돌려주자. 주부를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킨 세탁기, 언제 어디서나 목소리를 듣게 해준 전화기의 감동을 ‘생활’ 속에서 창조하자. 첨단 초고가로만 포장된 제품 앞에서 소비자의 지갑은 머뭇거린다. 10여년 쓰고 버려지는 전자제품에 유럽의 혼이 담겼다해서 소비자 자신이 유럽 디자이너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