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소재란 뭘까’ 개념 정립만도 1년 걸립니다.
글로벌 화학 업체 A사는 최근 전자소재사업부를 재정비하기 시작했답니다. 대개 국내 업체들은 수익 기여도나 시장 변화에 따라 조직을 변화시키죠. 하지만 A사는 접근부터가 다르더군요. 우선 ‘전자’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립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전자소재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전기적 특성을 지닌 화학소재를 칭했습니다. 하지만 전류가 통하지 않는 소재도 참 많죠. 대표적인 것인 플라스틱이나 코팅제 같은 것들이죠. A사는 내년까지 전자소재에 대한 개념 정리를 끝내고 이에 따라 조직도 새롭게 꾸밀 예정이라고 합니다. 개념 하나 세우는데 무려 1년을 소요한다고 합니다. 수시로 조직을 바꿔가는 국내 업체들과는 사뭇 대조적이죠. 어떻게 보면 시장 변화에 유연하지 못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이 회사는 내년이면 설립 160년을 맞이합니다.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고 움직인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A사의 장수 성장 비결은 바로 이런 기업 철학과 문화에 있지 않을까죠.
○…“손님 모시기 힘듭니다.”
한국은 해외 반도체 업체에 매력적인 곳입니다. 그만큼 글로벌 기업의 본사 임원이 한국을 찾는 발걸음도 잦은데요. 이들 기업의 한국지사는 본사 임원의 잦은 출장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나 봅니다. 본사 임원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죠. 요즘은 예전과 달리 한번 오면 장기 체류하는 경우도 많아 여간 힘든 게 아니랍니다. 매 끼니 식사 장소 잡는 문제부터 그럴싸한 비즈니스 미팅을 마련하는 것까지 쉬운 게 없다네요.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으면 힘들다 불평하고, 좀 여유있게 하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거의 시어머니 수준입니다. 하지만 아예 관심이 낮아 본사 임원들의 발걸음이 끊기는 것보다는 힘들어도 바쁜 게 낫겠죠.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합니다.
10년 전 일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가 인텔로부터 소송을 당한 일이 있었지요. 바로 인텔의 대표적인 상표 ‘인사이드’ 때문. 이 사건은 결국 지난 2011년 대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하면서 디시인사이드의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국내에서나 알 법한 작은 커뮤니티 사이트와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의 싸움에 황당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디시인사이드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텔’ 덕이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습니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법무팀’이 너무 강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해석도 그 중 하나입니다. 법무팀은 회사 전체 이미지나 상식보다는 상표권을 침해당했다는 생각이 강했을 것입니다. 종종 국내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지난해 삼성과 LG의 소송전도 그 중 하나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강력한 법무팀이 있어야 법으로 회사를 보호할 수 있겠지만, 자칫 지나치면 누가 봐도 우스운 이런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권리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그 모든 게 상식을 지키는 선에서 이뤄져야 하겠지요.
○…B사의 신설 법인 설립 이유는.
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팹리스) B사는 얼마 전 신규 사업을 분리해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잠재적 최대 고객사인 C사를 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B사는 그동안 C사의 경쟁사가 속한 그룹 계열사 D사에 제품을 팔아왔는데요. 사실 D사는 계열사에 불과한데다 제품·용처도 다릅니다. 그럼에도 신설 법인을 만든 건 C사가 협력사들에 ‘지나친 상도의’를 요구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또 C사가 협력사의 고객 다변화를 조금은 용인한다는 얘기가 들려오는데요. 실적이 안 좋아 협력사들이 문 닫기 일보 직전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또 돌변할지 모르는 게 고객 마음이니, B사 사장님은 현명한 선택을 한 셈이네요.
매주 금요일, ‘소재부품가 뒷이야기’를 통해 소재부품가 인사들의 현황부터 화제가 되는 사건의 배경까지 속속들이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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