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했다. 이 행장은 금감원 결정 직후 사의를 표명했다. 임 회장의 제재는 법체계상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치도록 돼 있어 징계가 이날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이날 여의도 금감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국민은행 주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중징계(문책경고)를 내렸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1일 두 사람에게 각각 경징계(주의적 경고)를 내렸으나 최 원장은 이 결과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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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장은 문책경고가 최종 확정된 후 곧바로 자진 사퇴했다. 임 회장은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이달 말 금융위원회에서 징계 수위를 최종 결정한다.
금감원장이 제재심의위 결정을 번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금융지주회사 회장과 행장이 한꺼번에 중징계 통보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최 원장은 임 회장에 대해 “국민은행 주전산시스템 전환사업과 그에 따른 리스크를 수차례 보고를 받았는데도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해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했고, 국민은행의 주전산기를 유닉스로 전환하는 사업을 강행하려는 의도로 자회사 임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설명했다.
이 행장에 대해서는 “작년 7월 이후 감독자의 위치에서 주전산기 전환사업에 대해 11차례에 걸쳐 보고를 받았는데도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해 위법과 부당행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함에 따라 사태 확대를 방치했고,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했다”고 중징계 사유를 밝혔다.
사퇴를 결정한 이 행장은 “은행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내 행동에 대한 판단은 감독당국에서 적절하게 하신 것으로 안다”고 입장을 밝혔다.
임영록 회장의 향후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문책경고를 받으면 대상자는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있고 이후 2~3년간 금융기관 재취업만 금지된다. 통상 중징계 대상자는 자진 사퇴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KB금융지주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경영 공백을 메꾸기 위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조직안정화와 경영정상화를 위해 이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자진 사퇴를 안하겠다는 임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최 원장은 최종 제재 수위를 두고 금융위와 어느 정도 교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에서 중징계가 번복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임 회장이 금융위 최종 결정에 앞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금감원은 당초 주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이사회 보고 안건의 조작·왜곡 등 일련의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 이들에게 각각 중징계를 제재심의위에 상정한 바 있다. 그러나 제재심의위는 위법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전산시스템 변경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점, 지주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롯된 점을 이유로 임 회장을 감경한 바 있다.
제재심의위에서 경징계 의견을 낸 직후에도 KB 내부 갈등은 봉합되지 못했다. 경영진 동반 템플스테이 과정에서도 임 회장과 이 행장이 대립각을 세운 것이 외부에 알려졌고, 이 행장은 전산장비 교체에 관여한 임원진을 검찰에 추가 고발하며 ‘불통’의 모습을 보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중징계로 제재수위를 확정한 데는 KB 최고 경영진이 갈등을 계속하면서 조직 내부는 물론이고 금융권 전반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도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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