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마다 국정 최고책임자들은 국민을 대상으로 5년간 ‘국정 브랜드’ 네이밍에 공을 들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세계화’를 내밀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벤처 육성,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통한 IMF 관리체제 탈출을 꾀했다. 노무현 정권은 지방분권을,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브랜드화했다. 야심차게 진행한 ‘국정 브랜드’ 만들기는 일부는 좌초했고 일부는 궤도에 올려놓았다.
집권 2년차 박근혜정부의 국정 브랜드는 ‘암덩어리 솎아내기’다. 산업 전반에 넓게 퍼져 있는 규제 암덩어리를 제거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특명이다. 눈치 빠른 장관들은 부처 칸막이를 낮추고 규제 개혁에 앞장서겠다고 외친다.
규제 개혁 총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규제는 죄악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입장은 180도 달라진다. 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규제는 사회정의를 지키는 지팡이가 되고 손해가 된다면 죄악으로 둔갑한다. 기업들은 산업경제를 위해 필요한 규제도 자기들 눈앞의 이익에 어긋나면 없애 달라고 아우성이다. 정부나 정치권은 본인들이 만든 법안이 무산될까 노심초사다. 그래서 사회적 규제갈등은 항상 ‘가치’와 ‘이익’ 사이에서 혼선이다.
문제는 갈등의 본질이 애매모호한 분야다. 일자리 창출과 산업활성화 측면에서는 반드시 없애야 하지만 이해관계인 간의 충돌은 항상 골머리다. 아직도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는 밀양 송전탑과 2020년으로 연기된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좋은 사례다.
환경규제와 산업진흥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국남동발전이 운영하는 영흥화력 7·8호기 건설이 대표적이다. 영흥화력은 수도권 전력의 25%를 담당하는 전력생산 전초기지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미 착공됐어야 했지만 연료전환 갈등으로 1년 넘게 오리무중이다. 당연히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7·8호기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사용해야 하지만 회사 측은 LNG로는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연료전환을 요구한다. 유연탄을 쓰면 연간 1조원가량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전기요금을 2.6% 낮추는 경제적인 효과가 크다고 주장한다. 다만 유연탄 사용으로 늘어날 수 있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줄이는 최첨단 환경설비를 갖출 것이라며 관련부처의 배려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규제와 진흥을 융합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다.
‘선승구전(先勝求戰)’이라는 말이 있다. 미리 이겨놓고 난 후에 싸운다는 뜻이다. 국내 전력산업은 IT와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충분치 않지만 이미 해외기업과 정부관계자들이 한국의 전력 융합기술을 배우러 잇따라 방문하고 있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국내 전력산업이 글로벌 에너지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면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는 성공적인 전력IT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창조경제의 핵심기반은 융합이다. 현장을 옥죄는 낡은 규제가 융합과 신기술 적용을 가로막는 환경에서는 창조경제를 꽃 피울 수 없다. 불명확한 규제는 규제를 피해가기 위한 또 다른 편법을 등장시킬 수 있다. 규제를 자신들의 밥그릇으로 보는 정부부처의 잘못된 인식도 개혁 대상이다. 그래야 박근혜정부의 ‘암덩어리 솎아내기’라는 국정 브랜드를 본궤도에 올릴 수 있다.
김동석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