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회사가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할 책이다. 저자는 자신만의 관점, 철학, 세계관이 없는 기업은 오래 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잘나가는 기업을 따라하기도 하고, 최신 트렌드를 줄줄 꿰지만 기업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 곳에서 승리의 깃발을 꽂기 위해 기업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오늘날 회사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근본부터 다시 짚어준다. 인텔, 아디다스, 삼성, 레고 등 업계를 망라한 사례로 철학과 인류학, 심리학 등 인문학의 세계를 넘나들며 경영해법을 탐구한다.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는 거대 기업의 경영자는 연일 인문학을 예찬한다. 최고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가 인기를 끌고, 동서양의 고전으로부터 지혜를 배우자는 흐름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이 사람, 세상, 흐름, 미래를 읽는 혜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장의 경쟁력 제고에만 급급해 원가를 낮추고 비용을 줄이고 사양을 덧붙이고 신상품을 줄지어 선보이고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데 집중하면서 열심히 달려왔지만 이제 정작 그것들 중 그 어떤 것으로도 승부를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들은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어렵게 인문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임원들이 고민한 문제들을 쉽게 풀어냈다.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삼성의 임원들은 문제의 재구성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질문을 바꿨다. 즉 ‘어떻게 하면 TV를 더 많이 팔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꾼 것이다. ‘가정에서 TV라는 현상은 무엇일까?’ 그들은 인문과학 분야의 분석가들을 팀으로 구성, 관찰 데이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TV를 거실 구석에 둔다. TV를 사는 일에 여성들이 관여하기 시작했고, TV 외관이 예쁘지 않다는 불만이 있다. 소비자들은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을 매력적인 물건을 집에 두고 싶어 했다. 여기에는 TV도 포함된다. 뿌연 화면만 보다가 어느 순간 조리개를 정확히 맞춰 초점이 뚜렷해지는 것처럼, 연구팀에도 마침내 통찰이 찾아왔다.
본문에는 삼성뿐만 아니라 파산 위기에 처한 레고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낡아빠진 스포츠계 골동품으로 전락할 뻔한 아디다스가 다시 업계 강자로 등극하고, 반도체 회사 인텔이 전방위적인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 등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들의 성공은 모두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시작으로 사람과 시장, 변화를 바라보는 시야를 현장으로 향하게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고 거듭나게 하는 인문학적 통찰로 이뤘다. 이 책은 그 핵심을 담은 최초의 기록들이다.
저자 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는 레드 어소시에이츠의 공동창립자이자 핵심 컨설턴트다. 특히 인문학적 접근법으로 포천 300대 기업의 수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직면한 비즈니스 과제 해결을 위한 공동 작업을 하는 데 능하다. 또 다른 저자인 미켈B. 라스무센은 레드 어소시에이츠의 공동창립자이자 혁신과 비즈니스 창의성 분야의 전문가다. 그는 유럽의 여러 기업들과 일하면서 시장에서 각광받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인문학과 결합하여 연구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 미켈B.라스무센 지음. 박수철 옮김. 타임비즈 펴냄. 1만6000원.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