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방송사 외주정책 제도 개선에 나선 배경은 불공정거래 관행을 끊기 위해서다. 지난 1991년부터 의무외주비율을 고시하면서 양적으로는 방송사의 외주 편성이 늘었지만 현재 제작환경에서에서는 방송사가 편성이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다는 판단이다. 특히 낮은 제작비 책정과 방송사가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갖는 문제가 여전해 외주제작사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DMB와 IPTV, 3D TV, 인터넷 동영상을 비롯한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방송 영상 콘텐츠의 안정적인 공급이 방송계의 화두로 대두됐지만 여전히 외주제작사 규모가 영세해 방송산업 발전에 한계를 지닌 것도 외주제작제도 개선에 나선 이유다. 외주정책 개선의 핵심은 외주제작 인정기준이다. 외주제작업계와 학계는 동시에 지난 2012년부터 외주제작인정기준이 만들어졌지만 실효성이 낮아 이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늬만 외주제작 틀 바꾸자
현행 외주제작 인정기준은 2012년에야 겨우 마련됐다. 외주의무비율이 만들어진 1991년부터 줄곧 저작권을 포함한 인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업계는 주장했지만 방송사 반발에 번번이 좌절됐다. 2012년에야 겨우 마련된 기준도 외주제작이라고 인정할 만한 잣대가 되지 못한다는 게 외주제작업계의 주장이다.
현재 방송법에서 외주제작방송프로그램은 외주제작사가 △방송프로그램의 극본, 구성 대본 등을 집필하는 작가와 계약 체결 △주요 출연자와 계약 △연출, 촬영, 현장 또는 미술 등 주요 스태프 중 2개 이상 분야 책임자와 계약 △방송프로그램 제작 재원의 100분의 30 이상을 조달 △제작비 집행·관리와 관련한 의사결정을 담당한 경우 등 5개 사항 중 3가지 조건만 갖추면 외주제작으로 인정한다.
외주제작사는 이 기준이 완전한 형태의 외주제작이기보다는 부분적 외주제작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즉, 계약이나 제작 주도권이 방송사에게 있어 외형만 외주제작사가 제작을 주도하는 형태라는 말이다. 대다수 제작사는 여전히 영세한 규모로 양적 질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올해 들어 제작된 드라마 ‘신의 선물’ ‘닥터 이방인’ 등도 법률상 외주제작에 포함되지만 기획을 주도한 것도 권리를 가진 곳도 방송사”라며 “형식적 외주제작이 여전히 성행한다”고 지적했다.
예능과 다큐멘터리 제작사가 모인 독립제작사협회도 인정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대식 독립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장르별 외주제작 편성현황을 보면 방송사 자체 제작만으로 한계가 있는 생활정보 프로그램 비율이 높고 편성시간대가 좋고 부가가치가 높은 프로그램은 외주를 외면한다”며 “현재의 인정기준으로는 제작사 여건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방송프로그램 관련 저작권을 살펴보면 방영권, 재방영권, 인터넷 다시보기, DVD 판매권 등 2차적 저작권은 대부분 방송사가 가진 형태다. 경제적 가치를 가진 우수한 프로그램이 적재적소에 유통되지 못하고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반면 방송사들은 새로운 의무비율 정책은 일부 제작사만 키우는 과도한 규제라고 맞섰다.
◇영국은 표준제작비와 저작권 규정 별도 마련
외주제작사 육성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특히 2003년 커뮤니케이션법 제정과 국가 관리 기구인 오프콤(Office of Communication) 설립으로 지상파와 외주제작사 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을 맞았다.
1990년 외주제작사 쿼터를 제정한 영국은 2003년엔 실행규칙을 설정하고 오프콤에게 감독 및 규제권한을 부여했다. 대표적인 것이 표준제작비와 저작권이다. 오프콤은 편성시간대, 프로그램 장르, 장르내 프로그램 포맷, 일부 예외적인 특집 등에 따라 일정한 범위의 표준제작비를 만들었다.
표준제작비가 만들어지면서 제작사는 프로그램 유형에 따라 제작비 범위를 알고 협상에 임할 수 있게 됐다. 제작비는 물가와 연동은 물론이고 재방송료 지불이 포함됐다. 또 방송사에게 배타적인 판매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한 외주제작물의 모든 권한이 제작사에게 귀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노동렬 성신여대 교수는 “영국이 표준 제작비 제정과 저작권에 대한 규정을 갖췄기에 영국 외주제작사는 미국 등 해외 시장 진출을 꾀하고 방송사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여러 제작사로부터 받는 콘텐츠 다양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에도 외주 형태별로 새로운 외주정책이 마련돼야 방송 콘텐츠의 다양화와 새로운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