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갑’ 지상파방송사가 독점해온 콘텐츠 저작권 독점시대가 사실상 종료된다. 정부가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가 콘텐츠저작권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인정기준을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갑을 관계가 뚜렷한 방송시장에서 외주 제작사 입지가 탄탄해져 산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 4사와 외주 제작사, 방송전문가가 참여하는 외주제작개선협의회와 방송산업상생협의회를 구성하고 외주제도 개선 협의에 착수했다. 이달 외주제작 인정기준 변경 관련 첫 논의가 시작된다.
외주제작 인정기준은 말 그대로 드라마, 예능, 교양·다큐멘터리 등을 외부 프로덕션이 만들었음을 증명하는 가이드라인이다. 방송사 외주제작 방송 의무편성 비율을 적용하는 잣대다. 현행 기준은 작가나 스태프, 배우 등의 계약이나 제작비 관리 등 행정 업무를 외주 제작사가 맡으면 외주 프로그램으로 인정한다. 여기에 저작권 공유 여부를 추가하는 게 뼈대다.
외주 제작사는 방송사가 프로그램의 외주제작 비율을 높이면서도 정당한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고 저작권까지 일방적으로 가진다고 주장했다. 제작 기여도에 따라 분배하는 저작권을 방송사가 독점해 불공정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박상주 드라마제작협회 사무국장은 “외주제작 의무비율과 인정기준 도입 취지는 외주제작산업 활성화와 방송콘텐츠의 다양성 보장”이라며 “현행 기준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박 국장은 “방송사는 외주 제작사가 기획한 프로그램에 일부 제작비만 지급하고 방송 편성이라는 막강한 힘을 앞세워 저작권을 모두 넘겨받는 사례가 많다”며 “앞으로 저작권을 누가 가지는지에 따라 외주제작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능과 다큐멘터리, 교양 제작사 단체인 독립제작사협회도 정당한 제작비 풍토를 마련하기 위해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독립제작사협회는 영세한 제작사 현실을 감안할 때 저작권 유무와 함께 공정한 제작비 지급환경도 포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에 방송사들은 새로운 규제라고 반발했다. MBC 한 관계자는 “저작권을 포함한 외주제작인정기준 도입은 의무비율 외에 방송사에 또 다른 재갈을 물리는 조치”라며 “경쟁이 치열해진 방송환경에서 지상파에만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른 시간 내에 결론 도출이 어렵더라도 꾸준히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곽진희 방통위 편성평가정책과장은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 주장이 워낙 달라 연말까지 시한을 정해 외주제작 인정기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늦어도 내년에는 제도를 개선해서 반영하겠다는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
-
이경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