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은 어제의 적을 동지로 만든다. 수십년간 ‘견원지간’과 같은 기업이 순식간에 필요에 따라 손을 잡는다.
애플과 IBM은 PC 시장을 두고 오랜 기간 경쟁하던 대표적 앙숙이었다. 스티브 잡스 고(故)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1983년 IBM 로고 앞에서 ‘손가락 욕’을 하면서 IBM을 조롱했다. 반면에 애플은 1984년 매킨토시를 선보이면서 IBM을 ‘빅브러더’에 비유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빗댄 애플 광고는 IBM을 연상케 하는 빅브러더를 박살내는 충격적인 영상을 과감하게 선보였다. 이에 IBM은 애플에 ‘썩은 사과’로 대응하며 맞불을 놓았다.
경쟁은 양사를 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당시 PC 시장을 선점하려던 애플과 IBM의 경쟁은 치열했다. 컴퓨터 발명 초기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의 컴퓨터 선두기업은 IBM이었다. 이후 IBM은 애플에 공격을 당한다. 그동안 IBM은 다소 큰 PC를 선보였다. 1977년 애플은 개인용 컴퓨터 ‘애플 Ⅱ’를 내놓으면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열었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지식 없이 사용할 수 있는 PC였다.
고심하던 IBM은 ‘호환성’을 무기로 다시 승기를 잡는다. 당시 애플 컴퓨터는 폐쇄적인 구조로 만들어졌다. 애플 관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제작하려면 애플이 만든 기준을 따라야만 했다.
1981년 IBM은 개방성이 강점인 ‘PC5150’을 내놓으며 다시 시장을 선점한다. 폐쇄적인 애플PC와는 달리 기본 프로그램 소스코드와 하드웨어 회로도를 모두 공개했다. IBM PC는 급속도로 기업과 가정에 보급된다. 출시 1주일 만에 24만대를 판매했다. 1983년 애플은 ‘애플 리사’를 출시했지만 비싼 가격과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는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난다.
1990년대 말 잡스는 다시 애플로 복귀하고 서서히 재기한다. 2007년 새해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의 변혁을 일으키겠다고 강조하면서 초소형 컴퓨터인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는다. 2012년 한 해에만 아이폰은 1억3500만대 이상 팔렸다. ‘앱’은 5년 만에 10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업계는 아이폰의 성공 밑에는 IBM과 수십년간의 경쟁 또한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IBM도 진화한다. 1990년대 말부터 하드웨어 사업 비중을 크게 낮춘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서비스 분야에 치중하면서 빅데이터 사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2004년 IBM이 PC사업부를 레노버에 매각하면서 10년 후 애플과 IBM은 손을 맞잡는다. 양사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서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양사가 경쟁 분야였던 PC 시장을 더이상 핵심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 판매를 기업에까지 확대하려고 한다. IBM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이 급속도로 모바일로 옮겨갈 수 있다고 판단, 애플을 활용하려는 목적이다.
양사 엔지니어들은 IBM 빅데이터 분석과 컴퓨팅 인프라를 활용해 업무용 앱도 함께 개발한다. 애플과 IBM은 유통, 헬스케어, 금융, 통신, 여행, 운송 분야 등을 포함해 100개 이상의 업무용 앱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들의 합작품은 올해 말 나온다.
양사의 동맹은 기업업무 환경이 태블릿과 스마트폰으로 순식간에 넘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애플과 IBM은 모바일 중심의 업무 환경 확산 의지를 보여줬다. 팀 쿡 애플 CEO는 “1984년에 우리는 경쟁 관계였지만 이젠 상호보완적 관계가 됐다”고 강조했다.
‘적과의 동맹’은 또 다른 동맹을 낳고 있다. 애플의 라이벌인 구글이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플랫폼이 가진 지분을 늘리기 위해 HP와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과 IBM 깜짝 동맹 직후 나온 협상소식이라 애플과 IBM 동맹을 견제할 수 있는 다른 동맹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