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서울 강남구는 ‘강남대로 미디어폴’을 두고 당시 행정안전부와 갈등을 빚었다. 동영상 광고가 강남대로를 향해 있어, 현행 옥외광고법상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강남구는 미디어폴을 ‘가로등’으로 등록했고,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체 조례를 제정해 디지털 사이니지 활용 시설물을 설치해야 했다. 사이니지 등 디지털 광고물에 대한 상위법의 교통정리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었다.
이르면 내년 디지털 사이니지를 이용한 광고가 합법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광고물 자유표시구역’이 업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각종 규제로 설치가 어려웠던 동영상 표출 디지털 광고물이 자유표시구역에서 자유롭게 설치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사이니지를 활용해 각종 창의적인 동영상 광고로 국내에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일본 도쿄 신주쿠·시부야 등과 같은 명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사이니지의 이용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미국은 옥외광고에 대해 법적인 규제 대신 옥외광고협회(OAAA)가 제정한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광고물을 창의의 소통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OAAA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모바일·소셜 활용 가이드라인’에 사이니지가 소비자가 머물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면 설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지적해 양방향 소통 도구로 성격을 정의했다. 또한 단방향과 양방향으로 구분해 각 형태에 맞게 사이니지를 활용토록 했다. 단순히 정보만 보여주는 것이 단방향에서, 소비자가 터치와 모바일 기기 등을 이용한 접촉으로 의사소통하는 양방향 사이니지 활용 목적도 감안한 것이다.
일본도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사이니지 설치 및 확대에 관대하다. 수도 도쿄는 도 조례를 통해 게시영역을 기준으로 광고물을 분류해 상황에 맞는 다양한 옥외광고물 설치의 길을 열었다. 이중 건축물의 벽면과 돌출면을 이용하는 광고는 초대형 사이니지 사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올해 1분기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매출 기준 세계 5대 사이니지 업체에 2위 NEC(11.8%), 3위 샤프(6.8%), 5위 파나소닉(2.7%)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반면 국내는 현행법상으로는 대부분이 불법이다. 현행법은 버스정류소의 경우 사이니지 등 동영상 광고 표출 매체를 도로의 차량 진행방향의 정면으로 놓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운전자 시야를 방해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심지어 편의점마다 동영상 광고를 위해 설치를 늘리고 있는 외부 지향 사이니지도 법 테두리 바깥에 있다. 늦게나마 이번 개정안에 따라 양지로 나오게 됐지만 이제부터라도 사이니지를 이용해 광고는 물론 디스플레이와 유관 산업 진흥을 이끌어내야한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사이니지가 창조경제 실현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김성원 디지털융합협동조합 이사장은 “사이니지 개발·제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환경 미비 탓에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며 “디지털 사이니지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수요를 찾아 경제적 효과로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수요 창출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해 사업 활성화에 나섰다. 안전행정부는 이번 옥외광고물법 시행령 개정안에 택시 상단부 표시등을 이용한 전광류 광고 시범사업을 포함했다. 국토교통부와의 협의를 거쳐 내년 하반기 이후 진행할 예정이다. 운전자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택시의 수익도 창출하고 소형 디스플레이 수요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잠재수요도 많다. 옥외가격표시제로 메뉴 가격을 외부에 광고해야하는 음식점, 버스정류장 현대화 사업으로 도착안내 전광판으로 디지털 사이니지 설치를 늘리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역의 랜드마크 뿐만 아니라 일상의 소통채널로 사이니지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업계의 기대도 크다. 디지털 사이니지에 쓰이는 IPS·PLS·VA 등의 패널은 ‘PD(Public Display)용’으로서 TV에 쓰이는 ‘TV용’보다 내구성과 광시야각 확보, 흑화현상 방지를 위한 기술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단순한 전광판 기능을 넘어 정보 교환 및 전달까지 가능해지면 부가가치가 크게 높아진다. LG전자 관계자는 “선진국 시장에서는 성장이 정체된 TV를 이을 디스플레이 산업으로 사이니지를 꼽는다”며 “옥외광고법 개정과 자유표시구역제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미래의 사이니지는 곧 디스플레이의 미래라는 인식하에 업계도 관련 기술 연구와 확보에 나섰다. 투명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냉장고 유리문 전체에 동영상 광고가 흐르고, 버스 유리창을 간단한 터치를 이용해 즉석에서 맞춤형 노선도와 주변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니지 등 상상이 현실로 구체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홍채를 인식해 맞춤 광고를 띄우는 사이니지가 현실이 될 것”이라 말했다.
업계는 디지털 사이니지 산업 활성화는 정부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한다. 법적 규제 완화를 물론이고, 상업용뿐만 아니라 공공에서도 사이니지의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7년부터 총무성이 디지털 사이니지 관련 사업을 전담하며 범국가적인 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재난 속보의 빠른 전달을 위해 스마트폰과 연동된 사이니지, SNS를 이용해 전국에서 모으는 속보를 한 곳에 띄우는 소셜 사이니지를 설치해 서비스하고 있다. 또 사이니지 품질 인증제도 도입했다.
김성원 이사장은 “사이니지는 디스플레이 패널뿐만 아니라 정보를 띄우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설치에 필요한 시설물까지 부가가치가 막대하다”며 “TV와 스마트폰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현실화된 만큼 사이니지도 연구개발 지원을 통한 품질 향상으로 시장을 앞서야한다”고 말했다.
※ 세계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 현황 (2012년 기준, 자료:글로벌 디지털 아웃 오브 홈 미디어 포캐스트 2013-2017, PQ미디어(2013. 5))
※ 세계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 규모 전망 (단위:백만달러, 자료:글로벌 디지털 아웃 오브 홈 미디어 포캐스트 2013-2017, PQ미디어(2013. 5))
※ 국내 디지털 사이니지 업계 사업 영역 (자료: 스마트사이니지 산업 시장 현황조사, 방송통신위원회(2012.12))
※ 세계 각국 디지털 사이니지 기술 동향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