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작업을 의미하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은 주로 음악, 미술, 패션 등 문화 영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미술이나 음악 분야 아티스트들이 서로의 스타일에 영감을 받아 함께 작업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패션 등 상업 영역으로 넘어오며 유명한 입생로랑의 ‘몬드리안 드레스’ 등을 탄생시켰다.
콜라보레이션은 이제 IT 업계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다른 업체와의 협력을 의미하는 단어로 널리 쓰이며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다. 서로 다르거나 비슷한 업체의 기술, 브랜드 가치를 더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하며 제품 판매 확대와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신의 한 수’ 역할을 하고 있다.
◇새 가치를 만드는 콜라보레이션
IT 업계에서 콜라보레이션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사례로 유명한 것은 LG전자의 프라다폰이다. 패션과 IT의 만남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제품은 총 6년간 협업을 지속하며 3개의 시리즈 제품을 선보였다. 제품 개발단계부터 함께 협력하며 외관 디자인부터 내부 사용자환경(UI) 설계까지 함께한 제품으로 중고 제품도 품귀 현상을 만드는 등 연이은 판매 히트를 기록했다.
최근 회사는 제품 사운드 성능 개선을 위해 또 다른 업체와 손을 잡았다. 유명 사운드업체 하만카돈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며 TV부터 블루투스 이어폰 등 음향 주변기기까지 선보였다. 협업한 신제품 초고화질(UHD) TV는 하만카돈의 ‘울트라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적용해 기존 TV에 비해 균형 있는 음향과 넓은 재생 대역을 제공해 TV 제품에 새 가치를 부여한 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블루투스 이어폰 역시 스마트폰의 인기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주변기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웨어러블, 콜라보레이션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작된 급속한 제품 지각변동은 IT 업계에 콜라보레이션 열풍이 확산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기술이 융합된 웨어러블기기를 필두로 새로운 제품이 탄생하고 소비자 사용 환경도 변하며 업계 경계는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글로벌 IT업체들은 새 물결에 맞춰 협업 확대에 발 벗고 나섰다.
삼성전자는 최근 발표한 스마트워치 기어S를 준비하며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손잡았다. 기어S는 나이키와 공동 개발한 ‘나이키 플러스 러닝’을 탑재했다. 스마트폰과 연동 없이도 나이키 신발과 연결돼 착용자의 운동 기록과 심박수 등을 자동으로 측정할 수 있어 웨어러블기기의 사용 범위를 한 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캐나다 OM시그널은 미국 유명 패션 브랜드 랄프로렌과 ‘테크셔츠’를 개발했다. 올해 열리는 주요 테니스대회인 US오픈을 맞아 생체정보를 클라우드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는 옷이다. 각종 센서가 부착된 옷에서 읽은 생체정보는 시각화된 형태로 변환돼 모바일기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동차로 확대되는 IT업체의 러브콜
자동차업체를 향한 IT기업의 러브콜도 늘고 있다. 자동차 분야에서의 협업은 오디오가 대부분이었다. 유명 오디오업체 뱅앤올룹슨은 벤츠, 아우디, BMW와 보스는 닛산, 르노삼성 등과 협업하는 사례가 유명하지만 최근에는 애플, 구글 등도 자동차업체와 손잡기 시작했다. 모바일 기술이 발전하며 콘텐츠 소비가 차량 내에서도 가능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구축부터 무인자동차 기술 등까지 다양하게 협력하고 있다.
애플은 올해 초 열린 제네바모터쇼에서 차량용 운용체계(OS) ‘카플레이’를 공개하고 자동차 제조사들과 제휴를 늘리고 있다.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 등과 협업해 향후 차량에 탑재를 준비 중이다. 이밖에도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파이오니아, 알파인 등 기존 차량 내비게이션업체와의 협업도 확대 중이다.
구글은 ‘커넥티드 카’ 개발연합인 ‘오픈 오토모티브 얼라이언스(OAA)’로 자동차업체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자동차에서 구현한 것과 같은 ‘안드로이드 오토’ 탑재를 위해 제너럴모터스, 폴크스바겐, 현대기아차부터 LG전자, 파나소닉, 엔비디아 등의 업체와도 협력한다.
김창욱기자 monocle@etnews.com
스마트폰부터 웨어러블기기의 등장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IT 기상도는 업계의 인사 풍속도 바꾸고 있다. 업체 기술 등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전혀 다른 분야의 노하우를 얻기 위해 외부 담당자를 영입하는 등 분야 간 융합 움직임이 눈에 띈다. 다른 분야 인사를 영입하는 것도 업계 화두가 되고 있는 콜라보레이션의 연장이라는 해석이다.
아이폰, 아이패드를 출시하며 IT 업계뿐 아니라 소비자의 일상생활까지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애플은 가장 발빠르게 다른 분야에서 주요 인물들을 영입하고 있다.
애플은 명품 패션 브랜드 인사 채용을 확대했다. IT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분야지만 명품 브랜드의 유통관리부터 향후 웨어러블기기 시장이 커질 것을 대비해 패션 분야의 노하우를 접목하려는 노력이다.
회사는 지난해 애플스토어 등 유통 전략 강화를 위해 패션 브랜드 버버리의 안젤라 아렌츠 최고경영자(CEO)를 끌어들였다. 그는 지난 2006년 취임 이후 5년간 주가를 186% 끌어올리며 위기에 처한 버버리의 부활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 애플의 행보에 업계는 의아해하면서도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현재 애플 총괄부사장으로 소매유통을 책임진다. 버버리에서의 노하우를 접목하며 중국 등 신흥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제품 판매망을 확대하고 있다.
애플은 또 다른 패션브랜드 입생로랑(YSL)의 CEO와 유럽 사장까지 끌어 안았다. 폴 드뇌브 전 YSL CEO는 애플의 스페셜프로젝트팀을 이끌기 시작하며 유럽 패션유통 부문을 총괄하던 카뜨린느 모니에 전 YSL 유럽 사장 역시 해당 프로젝트팀에 합류했다. 스페셜프로젝트팀은 미래 웨어러블기기 적용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애플과 함께 세계 IT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구글 역시 웨어러블기기 전략 강화를 위해 디자이너 출신 마케팅 전문가를 임명했다. IT 분야 경험이 전혀 없지만 패션 분야에서의 경험을 새롭게 개척 중인 제품군 ‘구글 글라스’ 사업 전략에 녹이겠다는 판단이다. 회사는 이미 레이밴 등 주요 안경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룩소티카와 손잡고 디자인 개발을 진행 중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선봉장 페이스북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업계 1위 페이팔의 데이비드 마커스 전 CEO를 새 모바일메시징 사업 책임자로 영입했다. 급성장하는 전자상거래 시장을 겨냥해 메시징 앱과 모바일 결제를 결합해 광고 이외의 새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다. 업계는 기존 페이스북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메시징 시스템과 모바일 결제 분야의 노하우가 결합돼 협력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윤현승 LG전자 HE사업본부 TV음질팀 책임연구원
“협업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시너지는 단기간 내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LG전자와 하만카돈의 콜라보레이션에 직접 참여한 윤현승 LG전자 HE사업본부 TV음질팀 책임연구원은 본인이 느낀 협업의 힘을 이렇게 말했다. 특히 IT는 제품 경계를 허무는 컨버전스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콜라보레이션의 가치가 더 높다고 전했다.
그가 직접 참여한 하만카돈과의 협업도 같은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전통적인 정보전달 매체인 TV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하만카돈을 콜라보레이션 대상으로 선택했고 이로써 새로운 TV의 가치를 찾아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윤 연구원은 “OLED 등 차세대 TV 기술이 개발되며 영화·음악 등을 아우르는 통합 문화매체로서의 TV 역할을 위해 사운드가 중요해졌다”며 “고객에게 최상의 만족을 제공하기 위해 하만카돈과 함께 고민해 새로운 TV의 기준에 맞는 음질 기술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정의를 요구하는 기기의 등장과 함께 IT 업계에 협업이 늘고 있는 이유도 빠르게 기술적인 진보를 가져올 수 있는 협업의 시너지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기술적 진보를 위해서는 검증과정이 필요한데 이미 그 가치가 인정된 업체와의 협업으로 시간을 줄이고 더 큰 기대감과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연구원은 “콜라보레이션은 다른 가치를 가진 두 업체가 기술력을 높이고 소비자 접점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LG전자를 비롯해 IT 업계는 앞으로도 다양한 협업을 시도할 가능성이 열려있고 그 대상업체도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되면 분야를 막론하고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IT 업계에서 기술을 연구하며 협업을 진행한 한 일원으로서 “기술 융합 시대 속에서 무궁무진한 협업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최상의 가치를 제공하며 목적에 부합하는 생산·발전적인 콜라보레이션이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