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반도체 공정 기술을 주도해온 것은 노광기 업체였다. 네덜란드 ASML은 20나노대 첨단 노광 기술을 주도하면서 세계 1위 반도체장비 업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반도체 업체들은 ASML로부터 새로운 노광기를 먼저 제공 받아 공정 완성도를 높이는 게 일이었다. 국내 장비 업체들은 반도체 공정 중 일부 저부가 분야에서만 국산화에 성공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 기존 노광기는 10나노미터(㎚) 후반대 미세 공정에서 한계에 다다랐다. 10나노 이하 미세 공정 기술을 구현하려면 극자외선(EUV) 노광기가 필요하지만, 상용화되기까지 적어도 4~5년의 시간이 필요한 실정이다.
핀펫(FinFET)·실리콘관통전극(TSV) 등 3차원 반도체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장비·소재·부품 업계 기회가 생겼다. 3차원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광기보다 화학 증기증착(CVD), 화학적 기계연마(CMP), 식각(Etch) 장비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국내 장비 업체들은 CVD·CMP·식각 장비·소재 분야 기술을 상당 부분 축적한 상태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등 글로벌 기업에 비해 아직 기술적인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국내 반도체 업체들과 협력 체제를 강화한다면 단기간에 기술 수준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 반도체 양산 라인에 장비를 공급하는 등 성과를 내는 국내 업체들도 쏙쏙 나타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공정용으로 개발된 장비는 첨단 디스플레이 생산에도 활용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핵심 공정인 박막트랜지스터(TFT)는 반도체 공정과 매우 유사하다. 대다수 글로벌 기업들이 반도체 장비와 디스플레이 장비를 같이 만드는 것도 기술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요 기업인 반도체 업체들이 국산 장비·소재·부품을 더 많이 써야 하는 이유다. 후방 산업 수준도 높아지면 자연스레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경쟁력도 강해진다. 수요·공급기업 간 필드 테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양측은 많은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다. 핵심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하면 반도체 생산 원가도 줄일 수 있다.
전자공학 전공의 한 대학교수는 “3차원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CVD와 식각 공정이 갑절로 늘어 기존 공정 대비 70% 이상 비용이 늘어난다”며 “현재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많은 국산화 노력이 일어나고 있는 데 고유전(high K) 소재·CVD 가스 등 핵심 소재도 국산화 비율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