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명이 넘는 10대들이 아이돌 가수가 부르는 ‘저주인형’ ‘기적’을 함께 부르며 소리를 지른다. 이른바 ‘떼창’이다. 한국이 아닌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우리에게 머나먼 브라질의 한 대도시에서 벌어진 광경이다.
지난 7월 13일 브라질 상파울루 월드 트레이드 센터 내 5층 전시장 ‘2014 코리아 브랜드&한류상품박람회’에서 수천명의 브라질 10대들은 소리를 죽이고 한쪽 무대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이돌 스타 ‘빅스(VIXX)’에 맞춰진 눈들이다. 빅스가 무대인사를 마치고 공연에 들어서자 참았던 함성이 쏟아졌다. 우리 국민에게도 낯선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낸 한류 열풍이 브라질의 심장 상파울루에서도 이어졌다. 빅스가 최정상급 한류스타가 아닌데도 소리 높여 노래를 따라할 만큼 놀라운 반응이다.
빅스의 브라질 팬클럽 회장 라파엘은 “빅스 브라질 팬클럽에 가입된 사람은 4000여명에 달하고 이날 입장한 1200여명은 선착순 추첨으로 뽑힌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한 추첨은 15분 만에 1000여명이 모일 만큼 급속히 마감됐다”며 “나머지 참석자는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건물 바깥에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수백명 젊은이가 빅스의 티셔츠를 입고 줄을 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K팝 한류 발걸음, 콘텐츠·상품으로 이어져
빅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발걸음은 전시장을 떠나지 않았다. 전시장 곳곳에 마련된 한류 콘텐츠와 상품을 확인하는 발길로 이어졌다.
K팝의 열기는 우선 만화로 이어졌다. 콘텐츠진흥원 초청으로 사인회를 연 이현세 작가는 만화 첫 장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만화 속 준인공 ‘까치’ 얼굴을 그려주면서 참관객을 맞았다. 이현세 작가의 사인회에는 한글 ‘삼국지’ 만화를 나눠졌지만 금세 동이 날 정도로 인기였다.
당초 예정했던 두 시간의 사인회는 네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끝이 났다. 이현세 작가는 “브라질에서 내 존재를 알까 의아했지만 늘어선 줄에 신기했다”며 “K팝에 이어 한국 콘텐츠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K팝의 인기는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넘어 한국 사랑으로 이어졌다. 이현세 작가의 사인을 받은 브라질 한류 소녀팬 이사벨라 브리타는 “당초 빅스 공연을 보기 위해 동생과 함께 전시장을 찾았지만, 해가 지나며 한국 문화와 드라마·만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이제 한글도 제법 읽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한국 음식(K푸드)에도 관심을 보였다. 처음 맛보는 라면과 아이스크림에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따봉’을 외치는 이도 있었다. 소주 칵테일과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에도 관심을 보였다. 저녁에 열린 애니메이션 특별상영전에는 부즈클럽의 ‘캐니멀’, 로이비쥬얼의 ‘로보카 폴리’, 투바앤의 ‘라바’ 등이 상영돼 참석자들은 우리 애니메이션의 빠른 전개와 다양한 색감에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아르헨티나 애니메이션 제작사 아스트로랩의 페데리코 바리야 대표는 “뿌까 같은 한국 애니메이션 3~4개가 이미 남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며 “남미 사람들은 한국 애니메이션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 그래피직스와 제휴를 맺고 제작 및 배급을 함께 하기로 했다. 젊은이들이 한류에 몰리면서 브라질 방송사들도 긴급히 한류를 조명했다.
빅스는 브라질 4대 방송사 가운데 하나인 밴드TV 인기 토크쇼 ‘저녁광장(Agora e Tarde)’에 출연하는가 하면 전시 기간 중 브라질 4대 방송사가 모두 공연과 전시회 뉴스를 다뤘다. 한국 드라마나 음악을 그간 방송하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인 반응이다.
브라질 4대 방송사 가운데 하나인 반지TV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편성을 검토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윌터 카세이르 반지TV 부사장은 “브라질 젊은이들이 한국 K팝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처럼 많은 젊은이가 한국 음악 스타에 열광할 줄 몰랐다”며 “K팝과 한국 콘텐츠를 더 많이 편성하도록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카세이르 부사장은 “반지그룹은 지상파방송사와 케이블TV, 라디오, 신문 등 10여개 미디어를 소유했다”고 소개하며 “브라질 방송시장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 새로운 콘텐츠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K콘텐츠란 것이다.
K콘텐츠의 힘은 제조업에도 힘을 보탰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KOTRA 집계에 따르면 행사 3일간 다녀간 관람객은 1만8000명에 달했고 6개 기업이 참가해 중남미 각 지역 바이어들과 총 912건의 크고 작은 비즈니스 상담을 했다.
최태훈 브라질한국상공회의소 회장은 “브라질에 퍼진 한류는 5만 교민에도 큰 힘이 된다”며 “현재로선 의류 분야에 교민들이 집중해 있지만 캐릭터와 K팝, K드라마를 통해 사업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최 회장은 이어 “전시에 K팝과 만화, 전통공연이 흥을 돋우면서 브라질 바이어들이 한국 기업에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는 기회를 만들었다”며 “이는 향후 성장하는 브라질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안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