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은 문자 그대로 흐르는 거다. 유통의 흐름은 사고, 움직이고, 파는(Buy, Move, Sell)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통이란 싸게 사서, 이동시켜 비싸게 파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비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경쟁력이 없고 싸게 팔면 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통업의 핵심은 싸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갑질이 어떻고, 수수료가 비싸고, 판촉 비용 전가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아마존의 덩치가 커질수록 공급자와 수수료를 갖고 싸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농수산물 유통에서 세계적 명품 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통의 핵심은 근본적으로는 같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거다.
유통업의 바이어들은 경쟁자보다 더 좋은 상품을 경쟁자보다 더 싸게 사기 위해 새벽부터 산지와 항구, 이제는 전 세계를 헤집고 돌아다닌다. 싸게 사서, 적은 이윤을 붙이고, 경쟁적인 가격으로 팔고, 물량을 늘리고, 구매력이 올라가고, 그래서 다시 더 싸게 사고하는 사이클이 유통업의 핵심이다. 그렇다고 무엇이든지 다 싸게 파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방식은 전체 상품의 3분의 1은 경쟁자보다 싸게 팔고, 그 다음 3분의 1은 비슷하게 팔고, 마지막 3분의 1은 좀 비싸게 파는 가격 전략을 구사한다. 저마진, 저가격, 저수익의 사이클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고수익을 얻어야 한다. 안 팔리는 상품을 싸게 사면 큰일 난다. 유통을 하다 보면 재고만큼 무서운 게 없다. 잘 팔리는 상품은 재고가 없고 안 팔리는 상품은 재고로 넘친다. 이 재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유통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유통업의 핵심 정보는 상품 정보와 고객 정보다. 어떤 상품이 잘 팔리고 누가 구매하는지를 알아야 어느 상품을 싸게 사서 누구에게 팔아야 할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스템상으로 중요한 것이 상품DB와 고객DB다. 이 두 DB를 중심으로 사는 쪽에서는 공급망관리(SCM), 움직이는 쪽에서는 전사자원관리(ERP), 파는 쪽에서는 고객관계관리(CRM)가 중심 애플리케이션이 된다. 이른바 유통관리의 핵심인 단품관리(Unit Control)와 유통관리의 꽃인 자동 수발주(Automatic Replenishment)를 하기 위해서는 대용량 시스템과 이를 분석하기 위한 정교한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야 한다. 지금 빅데이터가 유행하고 있지만 유통업에서 보면 유통업 초기부터 이미 빅데이터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할인점은 3만개 정도의 SKU(Stock Keeping Unit)를 관리한다. 점포 입지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 다르지만 할인점 고객은 하루에 1만명 정도에 이른다. 고객이 한 번 방문할 때마다 할인점은 10개의 아이템을 구매한다. 그리고 24시간 365일 영업한다. 상품 가격도 시간대별로 다르고, 지역별로 다르고 채널별로 다 다르다. 각 점포에서 일어나는 트랜잭션을 실시간으로 모으고, 이에 따라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최저 발주량에 맞춰 공급업체에 주문을 내는 기술은 거의 예술에 가깝다. 유통 시스템들은 영업 특성상 거의 국내산이다. 다 직접 개발한 것들이다. 자기들이 개발했으니 유지보수도 직접 해야 한다. 유통에서 취급하는 상품의 단위는 다 다르다. 박스도 있고, 무게도 있고, 세트도 있고, 낱개도 있다. 원가 계산과 배송을 위해서는 각각 다른 상품 단위를 뭉쳤다 분리했다를 반복해야 한다.
전자상거래, 모바일 거래가 워낙 급속히 발전하다 보니 이제는 유통도 다 옴니채널로 넘어 가고 있다. 옴니채널은 온·오프라인을 통합해 관리하는 것이다. 옴니채널을 구축하다 보면 대형 유통업체라도 소규모 스타트업 같이 운영돼야 한다. 온라인에서는 조직이 크고 상품의 종류가 많은 것이 오히려 약점이 된다. POS, 점포 서버, 본부 서버로 이어지는 대형 시스템과 창의와 신속을 기본으로 하는 온라인 시스템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유통업에서 CIO를 지냈다고 하면 사실 좀 알아줘야 한다. 시스템이 방대한데다가 각종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IT시스템에 대한 사업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IT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유통업은 투자에 인색하다. 직원들에 대한 대우도 다른 업종에 비해서 열악하다. 그래서 직원들이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도 많다. 구정, 추석, 크리스마스 등 남들이 놀 때 더 바쁘다. 잠시 여유 부리면 어디에선가 문제가 터진다. 거기다가 유통업체는 거래업체를 쥐어짜는데 워낙 도사들이라 IT업체들이 슬슬 기피할 정도다. 그래서 IT 벤더들의 도움도 잘 받지 못한다.
유통업은 본래 입지 산업이었다. 목이 좋으면 장사가 좀 서툴러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그래서 IT 투자보다는 입지 확보가 우선이다. 입지는 이미 포화 상태다. 지금은 IT에 투자해야 할 때다. 이마트의 경쟁자는 홈플러스가 아니라 지마켓, 쿠팡이다. 곧 네이버, 아마존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유통업이 IT기업으로 변신하지 않고는 생존하기 어렵다.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