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의 해외 진출이 제3세계로 무대를 넓히고 있다. 동남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등 경제력은 다소 약하지만 인구가 풍부한 곳에서 스마트폰, 스마트기기, 통신 등 ICT 기술과 문화를 도입하려는 요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원래 동남아는 전통적으로 화교 자본이 위력을 떨치던 곳이다. ICT 수출품목도 예외는 아니다. 통신 인프라, 스마트기기 등 중국산 제품이 수년 전부터 시장에 들어와 영향력을 넓히는 중이다.
동남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 우리나라 ICT 기업 진출은 아직 더딘 편이다. 대기업이 이 시장을 목표로 제품을 생산해내기에는 아직 고객 바잉파워(Buying Power)가 모자란다. 유럽, 북미 등 시장에 집중해야 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기업의 눈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중소기업에는 기회다. 이미 발 빠른 회사들은 이 기회를 포착했다.
선진국의 생산기지국이 된 몇몇 국가는 벌써부터 만만치 않은 경제력을 갖추고 보다 높은 품질의 ICT 제품을 원하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무주공산’ 틈새 비집고 성공신화를 꿈꾼다
김승건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통계정보센터 본부장은 “중앙 아프리카와 화교 자본에서 벗어나려는 동남아 일부 국가가 국내 업체들이 도전해볼 수 있는 시장”이라며 “아직까지 무주공산인 상태로 봐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아프리카와 동남아 상황을 분리해 설명했다. 아프리카 지역은 공적자금을 가지고 ICT 인프라 전반을 키우려는 경향이 강한 데 비해 동남아는 이미 화교 자본이 깔아놓은 통신망 등 기초 인프라를 토대로 학습효과가 충분히 이루어져 좀 더 수준 높은 품질의 통신 인프라, 스마트기기 공급 요구가 강하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접근방식을 전문화하고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최근 300만 가입자를 가진 동남아 한 통신사가 통화 불량 문제를 겪으며 불과 6개월 만에 가입자가 200만명으로 줄어든 사례가 있었다”며 “이런 상황들이 수준 높은 기술력을 가진 한국 기업들이 장점을 펼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3세계가 ICT 생산설비를 확장하는 것도 새로운 기회다. 완성품을 수출하는 것 외에 해당 국가에 생산기지를 설립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절세 등 혜택을 이용하면 적지 않은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최근 방글라데시 우정사업본부에 스마트폰을 수출한 조정현 코발트레이 사장은 “인도네시아 등은 화교상권에서 벗어나려는 상황”이라며 “자국 산업 인프라를 키우려는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 움직임은 국내 중소기업들에 큰 기회”라고 설명했다.
코발트레이는 최근 한국에서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부품을 생산해 인도네시아에서 완성품을 조립하는 체제를 갖췄다.
장호연 TV스톰 사장은 “중소기업은 빨리 만들어서 빨리 팔아야 한다. 대량 물량 공세 자체를 정면으로 받으면 중국을 이길 수 없다”며 “해외 생산기지는 하드웨어를 싸게 만들고 소프트웨어는 가치를 높여 받을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품목의 패키지화’ ‘정부의 금융·회사 보증’ 필요
중소 ICT 기업들이 동남아, 아프리카 진출을 활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 지원이 필수조건이다.
대부분 단일품목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단신으로 제3세계 시장을 뚫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KAIT에 따르면 최근 베트남 현지 업체가 자국에 진출한 한 국내 중소 ICT기업 존재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구로구청에 직접 전화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중소기업과 제3세계 시장이라는 조합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중소기업들은 △회사에 대한 정부 보증과 △국가차원 금융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장 사장은 “개별 회사들이 제3세계 국가에 나가서 인정을 받기까지 어려움이 많다”며 “정부 기관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을 국가 차원에서 확인해주는 제도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보선 맥킨리 연구소장은 “제3세계 통신사업자들은 대부분 자금이 부족하다”며 “해당 국가 통신사와 국내 기업이 매칭된다면 국가가 정책자금으로 원조하고 이를 (장기간에 걸쳐) 회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3세계 경쟁상대인 중국의 통신자본 물량공세를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ICT 기업의 해외 진출지원 자금을 통합해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비슷한 카테고리 속 단품을 파는 중소기업을 묶어 통신 인프라부터 단말까지 패키지로 공급하는 전략도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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