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50주년]제조공장에서 혁신 거점으로 재탄생

지난 1960년대 초 우리 정부의 당면 과제는 가난 극복과 경제 자립을 위해 기존 농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공업화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전쟁의 상처가 채 치유되지 않은데다 이렇다 할 천연자원도 없는 한국으로서는 공업화를 통한 수출 산업 육성이 경제 발전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첫걸음이 서울 구로에 조성한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였다.

[산업단지 50주년]제조공장에서 혁신 거점으로 재탄생

이른바 ‘구로공단’으로 불리는 한국수출산업공단은 우리나라 산업단지의 시초다. 1963년 정부는 수출산업공업단지육성위원회를 설치하고 서울 구로동과 인천 부평을 수출산업단지 후보지로 상정했다. 검토 결과 국유지가 많고 인천에 비해 서울 도심과 근접한 이점에 힘입은 구로가 결정됐다.

정부는 1964년 3월 구로를 최종 후보지로 확정하고, 같은 해 9월 14일 제정한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에 근거해 우리나라의 첫 산업단지 조성을 알렸다. 산업단지 50년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구로공단은 1~3단지로 나뉘어 만들어졌다. 1967년 1단지가 구로동에 준공된 것을 시작으로 1968년과 1973년 2단지와 3단지가 가산동 일대에 각각 완성됐다. 이어 인천 부평과 주안 지역에 수출산업단지 4~6단지가 추가 조성되며 산업단지는 전국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산업단지는 경공업 위주의 수출 주도형 정책에 힘입어 성장세를 지속했다. 섬유·봉제업이 호황을 누렸으며 1975년 이후에는 전기·전자업종도 수출 주력산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시련의 기간도 있었다. 1980년대 이후 국제 유가파동에 따른 수출산업 침체와 극심한 노사 분규 등으로 인해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됐고, 공장 폐쇄와 동남아 이전 등이 잇따랐다. 수출과 고용은 각각 1988년과 1987년 42억달러와 7만3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단지 공동화, 수출 부진, 고용 감소 등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어느덧 산업단지 조성 30년이 지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시설 노후화 문제도 나타났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단지 고도화와 첨단화를 시도했다.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 제조업에 치중됐던 산업단지를 첨단 지식·정보산업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업종으로 바꿔나갔다. 마침 ‘IT 코리아’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로 IT 산업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구로공단도 1997년 수립된 ‘구로수출산업단지 첨단화 계획’에 따라 변화를 모색했다. 2000년엔 단지명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개칭했다. 단지 내에 국내 첫 벤처집적시설인 ‘키콕스(한국산업단지공단) 벤처센터’도 들어섰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G밸리’라는 애칭도 2000년대 이후 붙여졌다.

이에 힘입어 2000년 말 세 곳에 불과하던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지식산업 및 정보통신 업체 수는 2009년 말 3867개사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소프트웨어·게임·애니메이션 같은 도시형 첨단 IT 기업이 눈에 띄게 늘었다.

구로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산업단지도 하루가 다르게 변모했다. 생명과학, 출판문화 등 다양한 전문 산업단지가 등장했다. 우리나라 산업단지가 국가 전체 제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0년 51%에서 69%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국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9%에서 81%로 뛰어올랐다.

산업단지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터전이 됐다고 평가받는 것은 이같은 지표 때문이다. 산업단지가 처음 태동한 50년 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0달러를 밑돌았다. 아프리카보다 못사는 최빈국으로 꼽힐 정도였다.

산업단지가 우리나라의 공업화·첨단화와 수출을 주도하며 5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GDP는 2만4000달러를 넘어섰다. 세계 33위 수준으로 50년 전 100달러와는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이뤄냈다.

그렇다고 앞으로 산업단지에 장밋빛 미래만 펼쳐질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노후 산업단지와 환경 문제가 계속 대두하고 있고, 젊은 층의 취업 기피 현상도 여전하다. 대기업이 해외 공장으로 이전하자 이들을 따라 중소기업도 해외로 생산 설비를 옮기는 상황이다. 과거 1980년대 침체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50년을 위한 중장기 발전 계획에 따라 산업단지를 혁신 거점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수진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경영자협의회 사무국장은 “최근 들어 산업단지 입주기업에 대해 규제는 강화되는 반면 혜택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입주기업이 건강한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도록 현장의 애로 사항을 풀 수 있는 발전 정책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료:한국산업단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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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