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을 비롯한 우리나라 금속산업은 자동차·조선·기계·건설 등에 기초 소재를 공급함으로써 지속적 성장과 국제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견인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과잉 공급과 원재료 가격상승, 글로벌 수요 침체,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지속, 신흥국의 추격 등으로 새로운 성장 요인 창출이 절실하다.
주력산업을 고도화하고 신성장동력을 창출해 창조경제를 실현하고, 나아가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범용 소재 중심의 기반소재산업 생태계를 고도화할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타이타늄이 있다.
과거 미국과 소련 냉전시대에 군수용으로 개발된 타이타늄은 플랜트·조선·자동차 등 산업용은 물론이고 임플란트·안경테·골프채 같은 일상용 소비재로 널리 활용된다. 타이타늄은 강철보다 두 배 단단하면서도 무게는 절반 수준이다. 극저온이나 600℃ 고온에서도 비강도를 유지한다. 항공기 엔진과 동체 같은 항공우주산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재다.
타이타늄은 금에 버금갈 정도의 내부식성으로 담수화설비, 선박부품, 잠수함, 화학약품 용기 등에도 적용된다. 생체 친화성이 좋아 인공관절과 임플란트 등 인체에도 다양하게 사용된다. 동일한 원광석에서 제조되는 이산화타이타늄(TiO2) 분말은 도료·화장품·제지산업 등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지금 당장 150조원에 달하는 타이타늄계 소재·부품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오는 2025년 60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처럼 타이타늄은 우주항공·국방·의료·에너지·환경 등 미래산업의 핵심 소재로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그 유용성에 비해 산출량이 터무니없이 적다. 두 배 가격을 지불한다 해도 수입량을 늘리기 어렵다.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1인당 타이타늄 사용량이 증가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은 정부 차원에서 타이타늄 주도권을 확보하고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저비용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간재와 부품, 완제품에 이르는 하공정 부문은 일정 수준에 올라 있지만 원재료에서 중간재 제조에 이르는 상공정 부문의 기반은 취약하다. 대외 의존율 90%가 넘는 세계 5위의 타이타늄 소재 수입국이 됐다.
제련·재활용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비싼 값에 사들인 타이타늄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다량의 스크랩(쇠 부스러기)을 싼값에 재수출하는 무역역조도 심화됐다. 하공정 분야 경쟁력 확보에도 한계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첨단 소재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고 기술 도입 또한 어려워 신규 진입자에게는 그만큼 차별화된 접근 전략이 필요하다. 철강·화학 등 기존 기반 소재산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획득한 핵심 공정 개발 경험을 십분 활용하면서 오픈이노베이션으로 국내외 역량을 결집한다면 파괴적 혁신기술(disruptive innovation technology)도 얻을 수 있다.
수요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단계적 시장 확대 전략도 중요하다. 산업용 타이타늄 소재에 대한 원가·품질 경쟁력 향상을 통해 플랜트와 조선산업의 수요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경기에 민감한 첨단 소재를 고려해 범용 수요 시장을 창출하는 한편 의료·항공·로봇 등 고부가가치 시장 진입을 위한 미래 산업용 수요 구조 확보 노력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친 고위험도 투자가 불가피한 기반소재 산업에서는 산업 생태계 육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산업계의 협업이 성장과 경쟁력 향상의 중요한 변수다.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 도약에 기여하기 위해 제조업계와 수요 산업계가 ‘진정한 국산화는 소재의 국산화’이며 ‘국가 기반소재 산업 발전이 제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동반자 인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장웅성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금속재료PD wsc1331@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