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서양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알프스 산맥을 넘어 역사적인 기습을 성공시킨 희대의 명장 한니발도 로마를 멸망시킬 수 없었다. 로마가 그토록 강성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뭘까. 바로 시민들 덕분이었다. 대다수가 자영농이었던 로마 시민은 전쟁 징발 때 무기와 갑옷까지 직접 챙겨야 했지만,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로마는 유럽·북아프리카·서남 아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일군 뒤 이내 ‘효율성의 딜레마’에 빠졌다.
비옥한 이집트에서 생산된 밀은 로마로 밀려들어와 자영농들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귀족들은 경쟁적으로 토지를 늘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전쟁에 차출된 중소 자영농의 농토를 뺏기도 했다. 로마에 대한 시민들의 충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로마는 계속 영토를 넓히며 제국의 위용을 과시했만, 그뿐이었다. 결국 로마는 야만족이라고 무시하던 고트족의 손에 점령당했고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우리 IT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반도체·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스마트폰·TV 등 주요 제품을 아우르는 정보기술(IT) 산업 강국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의 추격에 밀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로마는 적에게도 장점을 배우는 ‘벤치마킹’의 달인이었다. 우리 IT 기업들도 과거 품질 수준이 낮은 제품을 생산했만, 미국·일본 기업을 배워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우리 세트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체 경쟁력도 있지만 든든하게 후방을 지켜준 국내 중소 소재부품 협력사의 공도 컸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자영농과 같은 역할을 했다. 최근 국내 세트 기업들은 수익 극대화 및 가격 경쟁력을 위해 중국 협력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외 협력사를 활용하는 것을 무조건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후방 산업이 무너지면 결국 세트산업 경쟁력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