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념 석학 설문조사] "차세대 성장 동력 발굴 못해 미래 경쟁력 더 나빠진다"

국내 최고의 공학 분야 석학들은 향후 우리나라 산업경쟁력의 위기를 전망했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IT나 중공업 등 주력산업의 미래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설문조사에서 한국공학한림원 회원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에 절반 이상인 55.14%가 보통이라고 평가했다. 나머지는 나쁘거나 좋다는 응답이 비슷했다.

하지만 5년 후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는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이 46.73%로 가장 높았다. 보통이라는 답변이 35.51%로 뒤를 이었으며, 좋아지거나 매우 좋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답변은 17.76%에 그쳤다.

경쟁력 저하를 우려한 이유는 차세대 성장산업 발굴 미흡(36.62%), 주력산업의 경쟁력 상실(29.58%), 경쟁국 부상(23.94%) 등 치열해지는 경쟁상황 대처가 미흡하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기업의 투자부진 등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 분야는 IT(43.72%)와 조선·자동차·철강 등 중공업(33.33%)을 꼽았다. IT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제품군은 휴대단말기(30.41%), 부품소재·반도체·디스플레이(30.41%), 디지털가전(21.65%) 등을 꼽았다.

하지만 현재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 분야의 미래 경쟁력 전망은 밝지 않았다.

향후 가장 급격하게 경쟁력이 떨어질 분야로 중공업(34.48%)과 IT(26.44%) 분야를 꼽았다. IT분야에서는 세부적으로 휴대단말기(34.88%)가 다른 제품군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이어 부품소재·반도체·디스플레이(13.95%), 하드웨어(12.79%), 소프트웨어(11.63%), 인터넷·포털(9.30%) 등이 뒤따랐다. 현재 가장 경쟁력을 갖춘 분야와 향후 우려되는 분야가 거의 일치한다.

특히 IT분야를 뺀 무역수지가 큰 폭의 적자라는 감안하면 IT위기가 곧 국가 경제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실제 지난 8월 기준으로 ICT 무역수지는 흑자(74억6000만달러)를 빼면 전체 무역수지는 27억40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선다.

아이러니하게도 IT나 자동차, 조선 등 현재 주력산업에 우려와 기대가 공존했다.

향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분야로는 조선·자동차 등 기술 기반 제조업(33.33%), 스마트폰·이동통신 등 IT(26.47%) 등을 꼽았다. 문화,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산업(24.51%)을 꼽은 답변이 뒤를 이었다.

적절한 투자와 대책이 뒤따른다면 현재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산업구조를 전제로 향후 5년 후 한국경제 성장 전망을 묻는 질문에서 정체(0%)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답변이 절반 정도 차지했던 결과와도 연결된다.

설문을 진행했던 한국공학한림원 관계자는 “현재 역할이 큰 만큼 우려가 있고, 우려만큼 기대도 큰 아이러니한 우리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설문 결과”라며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춘 융합과 혁신이 따르지 않으면 기대가 아닌 우려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라고 풀이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융합·혁신 필요

전문가는 우리 산업의 위기극복을 위해 융합과 혁신을 강조했다. 각각의 산업경쟁력은 뛰어나지만 이를 융합하고, 혁신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패스트 팔로어로서는 훌륭했지만, 퍼스트 무버로서 역량에는 의문을 표했다.

이 같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로 석학들은 이공계 인재양성(23.86%)과 규제개혁(22.84%)을 가장 우선 순위로 꼽았다. 다음으로 융합형 산업발굴(13.71%)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산업과 특화해 융합이라는 화두를 던진 셈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성화되고 있는 융합 산업 분야로는 자동차IT(60.58%)를 꼽았다. 의료IT(21.15%), 금융IT(7.69%), 교육IT(4.81%) 등이 뒤를 이었다.

전략적으로 공략할 융합 산업으로는 의료IT(48.57%)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의료는 가장 많은 규제가 존재하는 분야로 첫손에 꼽히는 분야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어 에너지IT(20.95%), 자동차IT(19.05%)가 뒤를 이었다.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은 융합·혁신이 반영된 산업 육성을 위한 과제로 다양한 의견을 제안했다.

이종산업 간 교류 활성화(27.54%), 융합형 과제 정부지원 확대(26.95%),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23.95%), 대기업의 융합형 서비스 발굴 환경 조성(18.56%) 등 다양한 과제가 비슷한 비율로 언급됐다. 이외에도 정부 간섭을 최소화한 창의적 교육환경, 기계와 전자 융합, 규제개혁 등의 의견도 있었다.

IT산업 자체의 경쟁력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는 중공업 등 기존 제조업과 IT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 없이는 현재 산업 경쟁력을 이어갈 수 없다는 동일한 시각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설문대상, 공학한림원은?

이번 설문은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107명이 응답했다.

공학한림원 회원은 학계, 산업계, 국가 기관 등에서 공학 및 기술 발전에 현저한 공적을 세운 우수한 공학기술인을 발굴, 우대하기 위해 지난 1996년 설립된 학술 연구기관이다.

국내 공학계를 이끌어 가는 리더가 회원으로 포진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공학인 협회로 회원의 자격 요건도 매우 까다로워 회원 선정 자체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회원은 정회원, 일반회원, 원로회원, 외국회원, 명예회원 및 단체회원으로 구성된다.

정회원은 300명으로 한정되어 있다. 매년 대학·연구소·기업 등에서 활동하는 공학기술 전문가 중에서 학문적 업적, 세계 최초 기술개발 업적, 특허, 인력양성, 산업발전 기여도 등을 평가해 전체 회원의 서면 투표로 선출한다.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전문가도 보통 재수·삼수 끝에 정회원 자격을 얻을 정도로 입회 심사가 엄격하다.

올해는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 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 전략기획단장,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김영재 대덕전자 사장, 우유철 현대제철 사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 이재용 연세대 교수, 김승우 KAIST 교수, 서일원 서울대 교수, 김승욱 고려대 교수, 김영호 한양대 교수 등 13명만 이 심사를 통과했다.

정회원 전 단계인 일반회원에는 이정훈 서울반도체 사장, 오세용 SK하이닉스 사장, 민병주 국회의원, 차상균 서울대 교수, 박한일 한국해양대 총장, 임용택 KAIST 교수 등이 선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