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세상의 절반을 달라
1.
크리사피우스는 핏기 하나 없는 벌써 저승의 얼굴로 테오도시우스 황제를 보았다. 그는 아틸라가 보낸 편지가 자신의 죽음을 만인에 알리는 부고(訃告)라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부고는 그가 아틸라 곁을 떠날 때 이미 출발한 것이었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공포와 불리하기만 한 불안의 몸서리를 황제에게 보냈다. 지나치게 학구적이라고 소문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테오도시우스, 당신은 아틸라처럼 훌륭한 한 아버지의 아들이다.
아틸라가 그의 아버지인 문주크로부터 물려받은
존엄성과 위대한 야망을 갖고 있는 반면,
테오도시우스는 당신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켜
아틸라에게 조공을 바치는 지위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주인인 아틸라를 살해하려 하다니,
아틸라에게 예속된 노예로서 상하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구나...“
그 순간, 오에스테스가 죽음의 방식을 들고 귀신처럼 나타났다. 그는 아틸라의 그대로 현현(顯現)이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가공할 적을 감당해내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에스테스는 하찮은 존경조차 담지 않고 말했다.
“지상의 가장 큰 제국이라 일컫는 로마의 황제가 스스로 가장 치졸한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훈 제국은 대대로 라인강, 그 뒤의 검은 숲(슈바르츠발트)의 고트족과 반달족을 막아주며 로마를 보호해왔습니다. 로마는 태어날 때부터 이 무서운 게르만족과 싸워야하는게 운명이었고 태어나지 말아야할 그 운명을 훈 제국이, 아틸라 제왕이 대신 싸워왔거늘, 황제께서는 이리도 쉽게 배신하시니...”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로마를 책임져야 하는 억눌림에 한없이 가위눌리고 있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얼굴은 고심으로 가득찼다.
“아틸라 제왕께서는 세 배의 조공을 요구하셨습니다. 또한 암살계획에 대한 대가로 배상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오에스테스는 불량배였다. 하지만 그의 자존심은 호전성을 살짝 내려놓았다.
“내 어찌 아틸라 제왕의 배짱을 당하겠소? 곧 사절단을 만들어 아틸라 제왕을 찾아가겠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오에스테스는 아틸라의 잔인성을 상징했다. 그러나 그 잔인성마저도 잔인성의 외곽일 뿐이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크리사피우스를 처형한다는 조건입니다.”
오에스테스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로마의 권위를 치열하게 짓밟고 나가버렸다.
“제가 아틸라를 다시 만나고 오겠습니다.”
막시마누스는 감히 공세를 취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섣부른 판단을 했었다.”
막시마누스는 시시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난, 아틸라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땅의 중원에 있다고 생각했다.”
막시마누스는 코를 훌쩍거렸다.
“아틸라는 시대의 중원에 있는 남자다. 그가 스스로 죽지 않고서 이 시대의 그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놀랍게도 로마의 거추장스러운 과장된 장식들을 다 떼어내고 소박하고 단순해져 있었다.
“아틸라에게 사절단을 보내라. 그 사절단의 책임자는 노모스다. 그에게 말하라. 아틸라 제왕의 모든 제안을 수용할 것이며, 은혜를 베풀어 그동안의 전쟁을 통해 발생한 로마의 포로들을 인도해달라고 말하라.”
크리사피우스가 다급히 나섰다.
“제가 사절단의 단장으로 가겠습니다. 제 목을 걸고 협상하겠습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처음으로 노여움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아틸라에게도 나에게도 너의 목은 중요치 않다. 다만 어마어마한 배상금과 어마어마한 조공 때문에 로마의 원로원들과 로마의 부자들은 너를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내가 죽이지 않아도 당장 이 궁을 나가면 살기 어려울 것이다.”
“로마가 저를 죽인다 해도 아틸라는 로마를 살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크리사피우스의 마지막 말은 그의 머리통과 함께 허공을 날랐다. 순식간이었다. 바길라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바길라스, 너는 아틸라에게 다시 돌아가라.”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에 바길라스는 오히려 때 이른 죽음이 훨씬 매혹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마 황궁은 원로원 의원의 암살로 들끓었다. 수십의 원로원 의원들은 암살자를 찾아내라고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플라키디아 황후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암살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다만 발설하지 않을 뿐이었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원로원과의 싸움에서 밀릴 수 없었다. “차라리 호노리아를 원로원에 넘기겠습니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어머니 플라키디아 황후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독배를 마시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은 너에게 독배를 마시라고 하고 있어.”
플라키디아 황후는 아들의 단호함을 메마른 소리로 쓸어버렸다.
“그럼 죽여버리겠습니다. 그때 죽였어야 하는데, 그때도 어머니가 말려서 참았습니다. 전 황제입니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이제 어머니에게 야단맞고 매 맞는 아이가 아니었다.
“물론 내 자식이어서 그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작은 핑계에 불과해.”
발렌티니아누스 황제가 플라키디아의 정치적 배후를 읽으려했다.
“너는 불과 여섯 살 때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물론 내가 만들었지.”
“로마의 황제는 여섯 살이 아닙니다. 이제.”
이제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아틸라의 잔인함을 닮고 싶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