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금융산업이 ‘혼돈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해외 진출은 더디고, 내수시장은 과열 양상이다. 신용카드 고객정보 유출, KB사태 등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금융계 최고경영자(CEO) 리더십이 재조명받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산업 2세대 리더를 꼽자면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맞수’로 통한다. 걸어온 길과 성향은 다르지만 선 굵은 리더십과 소통 능력으로 대규모 인수합병(M&A)과 조직 통합을 진두지휘하면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현장형 리더다. 밑바닥에서부터 오랜 시간 쌓은 경험과 몸으로 체득한 지혜가 경영의 과정에서 하나하나 녹아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리더보다 명료하고 강하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되는 두 리더를 만나 고민과 열정, 미래를 담아본다.
◆대담=정지연 경제금융부장 jyjung@etnews.com
◆사진=윤성혁 차장 shyoon@etnews.com
◆정리=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
Q.(정지연 경제금융부장)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지셨습니다. 흰머리도 많이 생기시고, 요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A.(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웃음) 많이 늙어 보인다는 의미죠? 요새 정신없이 하루가 가긴 합디다. 기자 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우리투자증권 통합 작업 때문에 행복하면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투-농협 통합증권사가 12월 31일 출범합니다. 통합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바로 IT 통합이에요. IT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큰 기관이 우투증권이라 여기에 농협증권 시스템을 얹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요새 증권업 보시면 알겠지만 온라인 비대면 거래가 많고 중요합니다. IT 부문을 무리 없이 잘 통합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직원들 간 화합도 무척 중요합니다. 두 증권사 간 임직원 교류 기회를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우투증권 인수에 앞서 인수합병(M&A) 사례를 많이 조사했습니다. 성공 사례를 꼽아봤더니 한국투자증권과 동원증권, 조흥은행과 신한은행 통합 사례가 있더군요. 성공 요인을 봤더니 바로 조직원 간 동질감, 같은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영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통합증권사의 지배구조를 조속히 확립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정) 몇 차례 기사에도 나왔지만, 임 회장께서 생각하는 우투-농협 시너지는 무엇입니까.
A.(임) 시너지에 앞서 목표가 뚜렷하다는 게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우투와 NH증권을 합치면 명실상부한 시장점유율, 수익 등에서 1위입니다. 1위로 올라선다는 기대감과 목표가 통합작업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투증권의 IB·WM 역량을 바탕으로 기업고객 기반을 확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자산 PB고객에게 고품격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농협의 취약한 대도시 채널도 보완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증권업은 현재 침체국면입니다. 홀세일(Wholesale) 능력이 앞으로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홀세일 분야에서 양측 모두 IB에 일가견이 있어 새로운 가치창출이 가능합니다.
리테일 부문은 상황이 어렵지만 증권사 수익 절반을 차지하는 영역입니다. 농협이 보유한 인프라, 즉 지역자산가를 상대로 한 영업력 강화를 시도할 것입니다.
결론은 두 증권사의 융합으로 NH농협금융지주가 비은행부문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비은행부문 자산 비중이 23.2%에서 32.6%로 증가해 4대 금융지주 중 가장 양호한 수익 다변화 체제를 갖추게 됩니다.
향후 자산운용, PE 등 상대적으로 미진한 사업분야에 대한 확충방안을 모색해2020년 비은행 사업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Q.(정) 국내 금융산업은 ‘내수용’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닙니다. 글로벌 비즈니스가 생존 화두로 떠올랐는데요, NH농협금융지주의 해외 진출 전략은 무엇입니까?
A.(임) 국내 금융사들은 현지 진출한 국내 기업 중심의 영업이 대부분입니다. 아직 현지화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NH농협금융지주는 농협중앙회, 농협경제지주 등 범농협적 협력으로 중국, 동남아, 중동지역 등 농업부문 개발 요구가 높은 지역에서 현지 제휴 등을 연계해 해외사업을 강화해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농업 관련 대기업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며, 이른 시일 안에 협력 사업이 가시화되면 공개할 예정입니다.
농협금융은 뒤늦은 해외진출로 사실 타 금융사 대비 글로벌 사업 부문에서 다소 뒤처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높은 대외의존도와 FTA 확대 등으로 국제금융 수요가 증대되고 있는 만큼 해외사업 추진과 병행해 금융계열사의 해외 진출 기회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해외자산운용뿐 아니라 국내 외국환사업을 연계한,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글로벌 사업 전략을 개발해 나가겠습니다.
Q.(정) NH농협금융그룹의 미래 먹거리 사업은 무엇입니까. 복안을 갖고 계신지요.
A.(임)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뉴 노멀’ 시대에 고객 요구는 다양해지고 자산운용 구조는 한층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금융의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환경이 왔다는 것입니다. 국내 금융사들도 기존과는 다른 상품과 서비스개발, 자산운용, 리스크관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죠.
농협금융지주는 미래전략사업으로 성장단계에 있는 글로벌 금융, 스마트금융, 실버금융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범농협적 차별화된 사업모델 발굴과 그룹차원의 시너지, 농협금융의 경쟁력이 기반이 될 것입니다. 스마트금융 고도화도 주요 과제이자 생존이 달린 문제입니다. 영업채널 전략 다양화를 통한 경영효율성, 마케팅 경쟁력 제고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특히 온라인과 모바일을 연계한 신금융사업 발굴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농협지주는 풀패키지 실버금융을 구현할 것입니다. 은행과 보험, 증권, 자산운용을 복합 연계한 포괄적 실버금융 사업 모델을 만드는 중입니다.
Q.(정) 과거 농협 전산사태, 정보유출 등 잇따른 보안사고 등으로 농협의 이미지가 나빠진 것도 사실입니다. 스마트금융 시대에 중요한 것은 보안 강화인데요, 준비를 잘하고 계십니까.
A.(임) 과거 굵직한 사고를 거치면서 느낀 것이 금융환경에서 ‘IT 능력이 튼튼해야 한다’는 교훈이었습니다. 카드 사태로 인한 정보보호, 대형 전산사고 등이 있었는데요, 제가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대응한 것이 바로 IT 투자였습니다. 종전의 농협 IT 체계는 경제사업, 상호금융, 은행 등이 죄다 묶여 있어 관리 사각지대가 존재했습니다. 이를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특히 은행은 2017년까지 전산 분리 완료 로드맵을 확정한 상황입니다. 현재 약 7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통합IT센터를 건립 중입니다. 고객 정보보호는 물론이고 과거 IT 사고 등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만큼, 농협의 실추된 이미지 회복에도 힘을 쏟을 예정입니다.
Q.(정) 농협도 스마트금융 환경에 적극 대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NH농협금융지주의 스마트금융 사업은 어떻게 가져갈 계획입니까?
A.(임) 휴대성과 편리성을 이유로 모바일 기반의 거래가 중심 채널로 부상했습니다. 물론 농협도 이에 맞는 사업전략을 마련 중입니다. 모바일기기로 마케팅할 수 있는 대면과 비대면 채널을 겸한 고객 중심의 영업지원 시스템을 추진 중입니다. 은행은 올 연말까지 ‘모바일 오피스’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고객 상담과 전자 약정, 감정평가까지 가능한 옴니 채널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농협생명은 내년 1월까지 가입설계부터 전자청약, 전자서명이 가능한 모바일 영업지원시스템이 구축됩니다. 농협손해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투증권은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영업지원 채널을 확대할 것입니다. 아울러 모바일 특성상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보안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겠습니다.
Q.(정) 민감한 질문 하나 드립니다. 최근 KB금융 주전산기 갈등 사태를 보면서, 일각에서는 ‘관피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금융지주 체계 무용론’까지 나왔습니다. 어떤 시각이신지요.
A.(임) (웃음) 저도 취임하면서 관피아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확히 따지면 ‘모피아’죠. 우리나라에서 관피아 하면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관피아란 전문성을 보유했는지, 기관이 원하는 인물인지, 자신의 출신성분만으로 내려온 것인지를 따져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직에 계신 분이 전문성을 보유하거나 기관에서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말하는 관피아로 낙인찍는 건 위험합니다. 관피아를 획일적으로 재단해선 안 됩니다. 분명한 가이드라인으로 사람을 평가해야 합니다. 저도 요새 관피아 논쟁이 벌어지면 긴장합니다. 오히려 좀 더 신중하게, 좀 더 분발해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KB사태를 보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다만 금융지주체계가 필요 없다는 의견에는 반대입니다. 우리나라 금융업은 지주체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은행, 증권, 보험 등 업종이 정확히 구분돼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지주 체계가 필요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금융은 제조, 유통, 운용 이 세 가지 메커니즘으로 움직입니다. 상품과 유통의 채널이 혼합되고 융·복합되면서 이를 컨트롤하고 관장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은행만 갖고 있는 국내 지주사가 있습니까? 은행이 증권 상품도 팔고, 보험도 파는 컨버전스 시대가 열린 겁니다. 이는 다시 말해 대형화하고 있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그럼 금융의 포트폴리오를 명확히 짜고 대형화에 맞춘 M&A전략 등은 누가 수립합니까. 바로 금융지주입니다. 전 세계 30대 금융그룹 중 24개사가 지주체제를 운영합니다.
KB사태는 지주사와 계열사 간 역할 분담이 정확히 안 돼 있어 생긴 문제 아닐까 싶습니다.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고, 관여할 일은 방기하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KB금융지주 무용론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보다 명확한 역할 구분을 정립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Q.(정) 우투증권 인수 등 숨 가쁜 나날을 보내셨는데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A.(임) 농협금융지주가 출범한 지 3년차가 됐습니다. 제가 지주회장을 맡으면서 느낀 건 농협 조직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해결과제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1등이 자리를 유지하는 것보다 5등을 1등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많다고 느껴집니다. 농협은 100% 순수 국내 자본으로 설립한 금융사입니다. 단순히 이익만을 좇는 사기업이 아닙니다. 창출한 이익은 농업과 농업인, 그리고 우리 실물경제에 100% 환원된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습니다. 제 남은 임기까지 모든 일을 마무리할 수는 없지만 초석을 놓는 심정으로 우선 우투증권 편입을 마무리할 것입니다. 은행에 치우친 수익구조를 은행, 보험, 증권으로 고르게 분산시켜 안정적인 수익창출 기반을 구축할 것입니다.
◇임 회장이 생각하는 NH농협금융그룹 ‘스마트금융’의 미래
“내년 초에 농협스마트금융센터를 발족할 예정입니다. 금융상품 중심의 비대면 전문상담체계 구축과 e마케팅 강화를 추진할 것입니다.”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급변하는 스마트금융 환경시대에 발맞춰 농협금융도 비대면 채널 강화 투자와 비즈니스를 대폭 넓히겠다고 밝혔다.
농협스마트금융센터는 인터넷, 전화, 스마트폰 등 비대면 모든 채널을 통해 유입되는 고객의 요구를 상담DB(KMS) 등을 통해 실시간 분석한다. 여기에 접점 채널의 소셜 네트워크(SNS)를 활용해 고객 대면화의 유도가 가능한 융·복합 시스템을 표방한다.
임 회장은 “채널 간 협업으로 고객에게는 더욱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임직원들에게는 업무처리에 시간과 장소 제약 없는 스마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내년도 복합점포 개설에도 힘을 싣는다. 임 회장은 “전국 단위로 대상지역을 물색 중”이라며 “지주 내 복합점포 개설을 위한 별도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당국이 복합점포를 대대적으로 허용한 만큼 전국 단위의 복합점포 구축을 스마트금융 비즈니스로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임 회장은 “자산관리와 커머셜 인베스트먼트, 기업금융 모두를 할 수 있는 점포를 구축하겠다”며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단위로 점포 개설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종룡 회장은?
[출생] 1959년 출생
[학력]
1978. 02. 영동고등학교 졸업
1982. 02.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84. 07. 서울대 행정대학원(석사과정 수료)
1998. 06. 미국 오리건대 대학원(경제학 석사)
[경력]
1981. 04. 공무원 임용(재무부, 행정고등고시 24회)
1999. 01. 재정경제부 금융정채국 은행제도과장
1999. 10.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증권제도과장
2002. 04.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금융정책과장
2002. 09.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장
2004. 05. 주영국대사관 재경관
2006. 11. 재정경제부 금융정책심의관
2007. 04.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2008. 08.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
2009. 02.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
2010. 04. 기획재정부 제1차관
2011. 09. 국무총리실 국무총리실장
2013. 05.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2013. 06. NH농협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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