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중견 부품업체 A사는 최근 개발한 신제품을 중국 스마트폰 업체에 제안했다. 신제품이 출시되면 으레 국내 스마트폰 업체에 먼저 납품한 관행을 바꾼 것이다. 무리한 설비 투자와 다른 협력사에 기술을 공개해 줄 것을 요청하는 국내 대기업보다는 차라리 중국 업체와 거래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A사처럼 중국 스마트폰 업체에 신제품을 제안하는 국내 소재부품 업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중국 정보기술(IT) 업체들이 한국산 소재·부품 덕분에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변신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급부상한 샤오미뿐 아니라 ZTE·화웨이 등 주요 중국 업체도 한국산 소재·부품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내 협력사들은 좋은 가격에 소재·부품을 공급하고, 중국 업체들은 시장 트렌드에 부합하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윈윈 게임’이다. 문제는 새로운 혁신으로 무장한 중국 업체들이 우리 IT 산업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들어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한국산 사파이어 소재 조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스마트폰 전면·카메라 커버 등에 사파이어 소재를 적용해 프리미엄 라인업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중국 샤오미는 국내 여러 소재 업체에 5만장 수준의 스마트폰용 사파이어 커버 조달을 의뢰했다. 5만대 한정 판매용 프리미엄 모델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부품 생산 일정이 10월인 것을 감안하면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 출시할 모델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화웨이도 최근 국내 소재업체로부터 15만개가량의 카메라 커버용 사파이어 소재를 구입해 갔다. 8~9월 사파이어 소재를 샘플 제품에 적용한 후 연말부터 대량 생산 제품에 채택할 계획이다.
화웨이·OPPO는 차기 스마트폰 개발을 위해 생체인식 기술을 보유한 국내 부품 업체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TV 및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퀀텀닷(QD) 소재를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중국 TV 업체들은 국내 기업보다 퀀텀닷 LCD 상용화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이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TV 시장 변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풀HD TV에서 초고화질(UHD) TV로 변화를 이끈 것은 중국 업체다. 국내 TV 업체는 오히려 1년 늦은 올해 본격적으로 UHD TV를 출시하면서 시장 트렌드에 뒤늦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지난 2분기를 기준으로 삼성, LG의 LCD TV 시장 점유율은 38%다. 중국 6대 업체 점유율은 22%에 이른다. UHD TV 시장에서 중국 6대 업체들의 점유율은 44%까지 올라간다.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는 “UHD TV는 중국 기업이 시장 트렌드 변화를 선도한 최초의 사건”이라며 “중국 업체들이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중국 고객사와 거래하는 국내 부품업체 사장은 “통상 중국 업체들은 협력사에 낮은 납품 단가를 요구하지만 기기 혁신이 가능한 소재부품에는 좋은 가격을 쳐주면서 국내 업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