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해’와 ‘그만해ㅠㅠ’가 주는 어감은 다르다. 같은 문자인데 ‘ㅠㅠ’가 들어가니까 어감이 확 달라진다. 전자는 명령조로 들리지만 후자는 애원이나 부탁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모티콘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모티콘은 감정(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다. 문자 텍스트에 감정을 가미한 이모티콘을 덧붙이면서 사람들은 더 생동감 있는 의사소통을 해왔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세한 감정까지 이모티콘이 역할을 대신한다.
간단한 문자 표시나 기호로 조합된 이모티콘으로 딱딱한 문자 소통에 숨을 불어넣은 셈이다. 이런 이모티콘의 개념을 최초로 컴퓨터 자판에 도입한 건 1982년 9월 19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게시판 내 댓글 전쟁을 해결하고자 탄생한 이모티콘
1980년대 초반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컴퓨터과학과에는 지금의 온라인 게시판의 효시 격인 ‘bboards’가 있었다. 교수나 직원, 학생이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게시판에 올라온 주제는 대부분 학문적인 내용이었다. 가끔 농담 섞인 이야기나 가벼운 일상 수다도 올라왔다. 그러나 비대면 소통을 하는 온라인에서는 충돌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농담조의 게시글이 올라왔고 조롱하는 투의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게시판 내 분쟁이 발생했다. 글쓴이의 의도는 농담이었지만 글을 읽는 당사자는 농담임을 알아채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온라인 소통의 근본적인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해당 게시판에는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댓글 소통의 난무로 ‘댓글 전쟁’이 불거졌다.
다툼이 이어지자 게시판을 이용하던 한 학생은 ‘*’나 ‘%’를 덧붙이고 글을 쓰면 농담조로 받아들이자는 암묵적 합의를 제안했다. 제안은 논의를 거듭해 발전했다. 이모티콘에 사람 표정을 대입하기 시작했다. 논의가 진전되던 중 스콧 팔먼 교수는 공식적으로 컴퓨터 글쓰기에 ‘:-)’라는 사람의 웃는 얼굴 모양의 이모티콘을 사용했다. 쌍점과 줄표, 괄호라는 세 개의 문자를 조합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글에 감정을 나타낼 수 있음에 사람들은 크게 호응했다. 슬픈 표정은 ‘:-(’으로 표현했다.
스콧 팔먼 교수가 제안한 두 가지의 최초 이모티콘은 대학 내 많은 사람에게 퍼졌다. 오래 지나지 않아 학교 밖까지 전파됐다. 스콧 팔먼 교수는 공식적으로 컴퓨터에 입력되는 이모티콘을 만든 이로 평가 받는다.
◇동서양 다른 모습으로 발전한 이모티콘
스마트 기기가 발전하고 문자메시지, 모바일 메신저 등 다양한 문자 소통 공간이 늘어나며 이모티콘도 함께 진화했다. 웬만큼 공식적인 업무 이메일이 아니면 간단한 이모티콘 사용이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모티콘은 동서양이 다른 특징을 지니며 발전했다. 서양에서는 스콧 팔먼이 개발한 ‘:-)’를 시작으로 주로 입모양이 바뀌며 감정을 전달했다. 동양에서는 보통 ‘^^’ ‘--’와 같이 눈 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서양의 웃는 모습이 ‘:-)’이라면 동양은 ‘^-^’다. 서양의 슬픈 표정이 ‘:-(’이면 동양은 ‘T.T’이다. 서양에서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입모양을 주로 이용하는 것에 비해 동양은 입보다는 눈 모양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에서 자연스레 문화적 차이가 드러난 셈이다. 국가별로도 사용 모국어 문자에 따라 다양한 이모티콘이 등장한다. 특히 한국은 모음을 이용한 다양한 이모티콘이 발달했다. 우는 눈모양을 나타내는 ‘ㅠ’와 ‘ㅜ’가 대표적인 예다.
◇텍스트에 감정이라는 양념을 치는 이모티콘
모바일 메신저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게 이젠 필수로 여겨진다. 이모티콘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독특하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웃는 이모티콘을 삽입하면 대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부탁을 하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도 슬픈 표정의 이모티콘을 넣으면 한결 부담감을 던다.
기본적인 기호의 조합으로만 응용되던 이모티콘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나 모바일 메신저가 발달하면서 캐릭터나 움직이는 플래시 형태로도 발전하고 있다. 기호로 표현하기 미묘하거나 복잡한 감정도 색깔을 입히고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수백가지 캐릭터로 쉽게 표현할 수 있다. 수백 마디의 말 대신 이모티콘 스티커 한 장을 전송해도 의사소통이 되는 시대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