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IPTV 3사가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인천AG) 방송 콘텐츠 재송신 대가를 마케팅·프로모션 비용 형태로 지원하기로 지상파 방송과 합의하면서 재송신 대가를 둘러싼 방송업계의 해묵은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은 지상파에 국민 관심 행사 재송신료를 줄 수 없다는 수용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맞서 지상파 방송은 양측이 체결한 재송신 계약 세부 조항과 저작권 침해 문제를 들어 별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상파 방송과 유료방송이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방송업계가 또 한 번 재송신 대가를 둘러싼 법정 공방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논란의 불씨, 재송신 계약
지상파 방송은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 각 유료방송 사업자와 합의해 체결한 재송신 계약 제6조 1항에 의거, 월드컵, 아시안게임(AG) 등 국민 관심 행사 재송신 대가를 요구했다. 유료 방송 업계는 해당 조항이 별도 대가 지불에 관계된 사항이 아닌 계약 주체 간 책무를 규정한 내용이라고 맞서며 재송신 대가 지불을 거부했다. 지상파와 케이블TV 업계를 각각 대표하는 한국방송협회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지난 6월 잇달아 성명서를 발표해 해당 조항 문구 해석에 관해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한국방송협회 관계자는 “지상파방송사와 유료방송사가 상호합의 하에 체결한 재송신계약에는 이미 2009년부터 ‘올림픽, 월드컵 등 국민 관심 행사 중계방송의 재송신 대가에 관해서는 별도 협의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IPTV 3사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2년 런던올림픽 재송신 비용을 별도 지불한 사례를 강조했다. 문화방송에 따르면 IPTV 3사는 런던올림픽 당시 지상파 방송에 각각 9억원, 4억5000만원, 4억원씩을 지불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이 근거로 내세운 재송신 계약서 제6조는 ‘재송신에 따른 양사의 책임’에 관한 규정”이라며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위한 중계권 및 방송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사가 부담하는 의무를 규정하는 조항을 둔 것이며 별도 대가 협상에 관한 문구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인천 AG 재송신 대가를 마케팅·프로모션 등으로 우회 지불하기로 합의한 모바일IPTV 업계는 브라질 월드컵 당시 홍역을 치렀다. 지상파의 별도 대가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면서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송출중단)’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 관계자는 블랙아웃 당시 “IPTV사업자가 월드컵 중계방송 콘텐츠를 모바일TV에 송출하기 위해서는 기존 IPTV 계약과 별도로 추가 계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콘텐츠연합플랫폼과 IPTV사업자가 체결한 ‘제휴서비스 제공에 관한 세부계약서’에 따르면 ‘지상파 실시간 채널 중 올림픽, 월드컵, 프로야구 등 모든 스포츠 이벤트 및 영화 등과 관련된 실시간 방송의 프로그램은 콘텐츠연합플랫폼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명시됐다.
IPTV 업계 관계자는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협상을 진행했지만 지상파가 제시한 금액 규모가 워낙 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지상파에) 관련 조항을 수정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무 재송신 범위 논란
가입자당 재송신료(CPS)는 지상파 방송과 유료방송 사업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핵심 쟁점이다. 현재 유료방송 사업자는 지상파 방송을 재송신하는 대가로 각 지상파 방송사에 매월 CPS 280원을 내고 있다.
현행 방송법상 지상파 의무재송신 채널은 KBS1과 EBS다. KBS2, MBC, SBS는 유료방송 사업자가 해당 지상파 방송사 동의 없이 방송 콘텐츠를 무단으로 재송신할 수 없다. 지상파 방송사가 유료방송 사업자에 CPS를 요구하는 근거다.
CPS 산정 기준을 둘러싼 지상파 방송과 유료방송 간 입장 차이는 극명하게 갈린다. 유료방송 업계는 유료방송이 난시청을 해소하며 지상파 콘텐츠 시청권을 보장하는 등 지상파에 공헌한 부분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상파 방송은 유료방송 사업자가 자사가 제작한 콘텐츠를 재송신하며 이익을 얻고 있는 만큼 제값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콘텐츠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며 CPS 재계약 시기마다 산정 기준을 둘러싼 양 업계의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최근 유료방송 업계가 지상파 방송이 요구한 브라질 월드컵, 인천 AG 콘텐츠 재송신 대가 지불을 전면 거부한 이유다.
유료방송 업계는 최소한 KBS2 채널을 포함해 현행 의무재송신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무재송신 지상파 채널 수를 늘리지 않으면 사업자 갈등에 따라 블랙아웃 등 시청자 피해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TV 업계 간 재송신 협상이 지연되면서 KBS2 채널이 블랙아웃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의무재송신 제도가 미흡해 사업자 간 법적 분쟁 및 시청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지상파 방송에 대한 보편적 시청권 보장, 유료방송 매체의 공공성·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무재송신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합리적 대가 산정 방식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 재송신료 분쟁 소극적 태도
지상파 재송신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1기 방송통신위원회 시절 점화됐다. 2기 방통위에서는 이경재 전 방통위원장이 의무재송신 범위 확대 등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3기 방통위에서는 구체적 재송신 갈등 해결책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최근 발표한 7대 정책 과제에 의무재송신제도에 관한 사항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블랙아웃 등 시청자가 직접 피해를 볼 우려가 있는 사안에만 개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지난달 ‘3기 방통위 비전 및 7대 정책 과제’를 발표하며 “현재로서는 (지상파 방송 의무 재전송) 확대 방안에 대한 검토는 없다”며 “업계 간 분쟁이 발생해 시청자 피해가 발생하면 재정 제도 등 분쟁 해결 제도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은 재송신 대가가 사업자 간 계약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정부 및 규제기관의 개입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국방송협회는 성명서에서 “케이블SO들이 계약에 근거한 협상 요청을 거부하면서 규제기관의 개입과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기본적 상도의를 벗어나는 행위”라며 “규제기관은 (시장) 개입보다 사업자 간 자율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을 독려해야 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유료방송 업계는 재송신 대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상파 재송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의무재송신은 지상파방송에 무료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라며 “국민은 어떤 유료방송 매체를 통해서도 국가기간방송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