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공계 교수가 지방에서 열리는 학술대회를 연구진과 함께 방문했다. 이 교수는 학술대회가 끝나자마자 대회장 옆 편의점에 들렀다. 그는 편의점에 껌 열 네 통을 사겠다고 주문하면서 껌 한 통당 영수증을 하나씩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중간에 다른 손님이 와서 계산을 하면 잠시 비켜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껌 열 네 통을 사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에 가까웠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교수가 왜 이런 황당한 일을 해야 했을까. 그의 하소연은 이렇다. 정부로부터 연구 활동을 지원받는데, 지역 학술대회 참가 여부를 증명할 현지 영수증이 필요했다. 비용과 상관없이 학술대회를 참관한 인원 전부가 하나씩 현지 영수증을 제출해야 한다. 이 교수는 자동차 한 대에 여러 명이 타고 지역 학술대회에 다녀와도, 반드시 한 명당 현지 영수증을 가져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처구니없는 사정은 이뿐이 아니다. 교육 차원에서 해외 유명 학술대회에 학생을 데려가고 싶은데, 아직 논문을 내기는 어려운 학생 수준에서는 참가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수한 논문을 쓰려면 학생이 참가해야 하는데, 논문을 쓰기 전에는 참가가 어려운 ‘역설’인 셈이다.
반면에 해외에서 열리는 학술대회를 다녀온 또 다른 교수는 최근에는 학회 형식이나 절차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래의 주역인 학생을 위해 반드시 까다로운 논문만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두세 장짜리 사전 논문을 쓰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논문 발표 대신에 자신의 연구결과나 미래의 사업 아이템을 청중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경제가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 형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 활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 중 일부가 형식상 요구에 그치는 일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하는 만큼 엄격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지만, 그 방법이 연구개발 의욕을 떨어뜨리거나 교육기회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