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한 교육과정 개정과 과학교육 약화 반대라는 과학계 요구를 끝내 반영하지 않았다. 지난 수개월간 이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초안보다 이수단위를 2단위 늘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과학계는 이번 교육과정 개정안으로 인해 과학교육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며, 최종 확정안이 고시될 때까지 개선 요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계 요구 반영 안돼
이번 교육과정 개편과정에서 과학계가 요구한 핵심은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한 교육과정 개정위 구성이다. 교육부가 구성한 교육과정 개정 연구위원회는 12명 모두 교육학자로 구성됐고, 이 중 10명이 문과계열 출신이다. 편향된 개정을 막기 위해 과학계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혀왔다.
교육부가 대안으로 각 분야 인사가 참여하는 ‘교육과정 개정 자문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이마저도 19명 중 13명이 교육계 인사로 채워졌다. 회의도 단 한 차례에 그쳤다. 결국 과학계 요구가 반영되지 않으며 교육학자 중심의 교육과정 개편이 이뤄졌다.
과학계 한 교수는 “부실한 과학교육은 대학교육에 부담이 되고 현 정부 핵심 정책기조인 창조경제에도 역행한다”면서 “과학 소양이 부족한 이공계 대학 신입생은 과학기술 연쇄부도 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 강화하는 선진국에 역행
미국과 영국, 중국 등 선진국은 국가 경쟁력을 위해 과학·수학 교육을 최우선시 한다. 핵심 교과에서 수학,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선진국과 반대로 가고 있다. 과학 필수 이수단위는 지난 2009년 교육과정에서 15단위에서, 이번에 12단위가 됐다.
실제 해외사례를 보면 영국은 영어, 수학, 과학을 핵심 교과로 지정했다. 국가교육과정이 없는 미국은 영어, 수학, 과학 세 과목만 국가 수준의 교육 표준을 제시한다. ‘과학공학적실천’, ‘관통개념’ 등 과학적 소양과 문제해결력을 기르기 위한 혁신적 교육방식도 도입했다.
중국 역시 국어, 수학, 외국어를 각 10학점으로 정한 반면 사회 12단위, 과학 18학점으로 할 정도로 과학교육을 강화한다.
◇수능 개편 없는 통합과목은 ‘독’
과학 12단위 중 통합과학이 8단위, 과학탐구실험이 2단위를 차지한다. 통합과학은 초·중학교 과학의 기본 개념과 탐구방법을 바탕으로 현행 물리Ⅰ, 화학Ⅰ, 생명과학Ⅰ, 지구과학Ⅰ의 30% 정도의 내용과 난이도로 재구조화해 자연 현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과목이다. 통합적인 개념을 가르쳐 미래 사회에 필요한 과학적 소양을 높인다는 점에서 통합과학 도입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입시에 편향된 교육현실을 감안하면 수능 제도도 함께 개편하지 않으면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진수 충북대 물리학과 교수는 “최소로 줄인 필수 이수단위보다 작은 단위의 수능 대상 공통과목을 지정하면, 학교는 3년 동안 대학 입시에 유리한 공통과목만 강의할 가능성이 크다”며 “학생들의 기초 소양은 더욱 제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