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기술,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과학산책]기술,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우리는 기술이 우리 사회의 주요 갈등 사안이 됐음을 목도하고 있다. 1978년 제3의 불이자 조국 근대화를 앞당길 동력으로 여겨지던 국내 최초 원자력 발전소 고리 1호기 폐쇄를 둘러싸고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 정부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 전기를 날라다줘 문명의 이기를 누리게 해줬던 송전탑은 어떻게든 내 고향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할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생활의 편리함을 약속해줄 것만 같았던 전력 설비들이 초래하는 환경과 건강 위험이 부각되면서 이들 설비 입지 및 활용을 둘러싼 논쟁이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발달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이처럼 기술을 둘러싼 논쟁이 더 자주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정부는 발전단가를 근거로 원전의 경제성으로 시민들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해외 여러 기관이 발표한 경제성 자료들은 종종 정부의 주장을 반증하곤 한다. 5중 보호벽과 다양한 원전의 사고 복구 기능 등을 들어 원전 기술의 안전함을 주장하는 정부의 목소리는 이내 환경단체들에 의해 반증되곤 한다.

전자파가 건강에 무해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고압 송전탑을 둘러싼 논쟁은 과학적 정보에 근거를 둔 설득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술의 사회적 영향 혹은 환경 영향에 대한 판단은 수학 공식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기술을 우리가 수용할 것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논쟁은 현대 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됐다.

더구나 우리 사회도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현대 기술이 가져다 줄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의 거대 기술 프로젝트에 대한 제동의 목소리들도 높아지고 있다. 위험 사회에 대한 연구들은 일반 대중의 위험 인식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정량적 확률과 사고의 피해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수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원전 사고를 훨씬 빈번하게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보다 더 위험하게 느끼는 것은 원전 사고의 폐해는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또 자발적으로 선택한 위험은 외부적으로 강요된 위험보다 덜 위험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밀양과 부산에서 고리 원전 폐쇄와 송전탑 반대를 외치는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결정하지 않은 정부 에너지 정책에 떠밀려 위험을 강요받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연관된 기술 위험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놓고 지역 주민들과 이들 위험을 어느 정도로 수용할 것인지를 논한다면 기술 수용은 훨씬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즉, 송전탑이나 원전 기술을 둘러싼 논쟁은 기술 위험을 시민들이 수용할 것인지, 수용한다면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전탑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이 입증되지 않은 전자파 위해성 괴담에 현혹돼 합리적인 정부 계획을 가로막고 있다는 방식의 접근은 논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송전망을 둘러싼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아예 송전망 계획 과정에서부터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해 송전망으로 인한 위험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독일의 실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독일의 홀슈타인 주는 2013년 한 해 동안 송전망 회사, 학계 전문가, 주 정부 관계자와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포럼, 토론회를 개최해 주민들이 합의하는 송전망로 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행보는 아니어도 우리 정부도 송전망과 같은 기술 위험을 강요하는 에너지 정책에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갈등 완화의 첫 단계로.

박진희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 jiniiib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