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을이 소원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 소프트웨어(SW) 기업 사장의 소원이다. 자조적인 이 소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SW업계는 잘 알고 있다. 1등 SW기업의 소원이 ‘차세대 먹거리와 고용창출 그리고 해외수출’이 아니라 ‘고객과 직접 일하는 을’이 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이 업체만 직면한 문제가 아니라 하도급에 멍든 우리나라 SW산업 전반을 대변해준다.
최근 국회에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을 위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고객과 직접 일하는 것이 그토록 절박했던 경쟁력 있는 전문 SW기업들에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이 법은 공공부문 SW사업 추진 시 원사업자가 사업의 전부를 하도급할 수 있었던 규정을 폐지하고, 원사업자의 하도급 제한비율을 100분의 50으로 명시했다. 또 하도급비중이 일정 비율을 초과하면 하도급자를 공동수급자로 참여시켜 수직적 거래관계를 수평적인 관계로 전환하고자 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하도급자가 다시 하도급을 줄 수 없도록 명시한 부분이다. SW산업의 다단계 하도급구조를 청산하겠다는 규정이다.
SW사업에서 비일비재한 재하도급 관행은 품질을 저하시킨다. 더 나아가 SW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고질적 병폐를 만들어왔다. 특히 SW산업 다단계하도급 구조는 SW산업 두뇌인 개발자 근로환경을 악화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하도급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하위단계 기업 개발자들이 받는 요구는 더 많아진다. 열악한 임금과 더불어 여러 ‘갑’들의 요구를 감내해야 하는 환경은 그 누구도 견디기 힘들다.
하도급은 모든 산업의 보편적 거래형태로 올바르게만 활용한다면 전문성을 보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SW산업 분야는 여느 산업과는 다른 점이 있다. SW산업에서 하도급은 본사 인력 채용 억제와 비용절감에 초점을 맞췄다. 갑과 을로 거래가 단순화되지 못하고 그 아래에 수많은 병과 정이 늘어선 구조다. 따라서 실제 가치를 창출하는 SW기업은 수많은 병과 정 뒤에서 제값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관행은 실제로 일하는 전문성 있는 SW업체 수익성을 크게 저하시키고 개발자 처우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고질적 SW산업의 병폐를 바라봤을 때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은 큰 의미를 지닌다. ‘전부 하도급 제한조치’로 기업은 하도급 대신 자체적으로 전문 SW인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재하도급 제한조치’는 최소 3단계로 내려가는 사업구조를 단순화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도급거래를 공동수급으로 전환하는 규정’은 실제 일하는 전문 업체를 존중하는 생태계를 마련해줄 것이다.
물론 SW산업의 구조를 일거에 혁신하기는 어렵다. 또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유연성을 다소 침해할 수도 있다. 정부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이 법안의 취지인 SW기업의 전문성 강화와 개발자의 처우개선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정책을 개발·시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SW는 창조경제의 중심이다. 동시에 우리의 미래 먹거리기도 하다. 진흥법 개정안을 통해 어제까지 1등 SW기업의 소원이 ‘갑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을이 소원입니다’였다면 앞으로는 ‘더 많은 인재 채용과 해외수출’이 꼽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대환 소만사 대표 kdh@soman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