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암울한 보고서 하나를 받아들었다. 지난 2000~2012년 172개 회원국 자살률을 비교 분석한 보고서에서 WHO는 우리나라의 2012년 자살 시도자가 10만명당 28.9명으로 12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남미 가이아나, 북한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자살률은 국민의 행복지수가 투영된 주요 지표 중 하나다. 이를 감안한다면 WHO 통계는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격에 결코 걸맞지 않은 것임이 분명하다. 각계 전문가들은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추진해 온 범국가적 대응책의 실효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6일 박근혜정부 들어 열 번째 지역발전위원회가 열렸다. 지난해 7월 국민행복에 초점을 맞춘 지역행복생활권 구상 발표 이후 1년여 동안 지역발전위원회는 ‘국민에게 행복을, 지역에 희망을’이라는 새로운 슬로건 아래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역동적인 행보를 벌였다. 특히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지역이 주도하고 중앙은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상향식 정책으로 기존 정책과 차별화를 꾀했다.
최근 제10차 지역발전위원회에서는 지역행복생활권 및 특화발전프로젝트를 비롯해 몇 가지 의안을 심의, 의결했다. 그중 하나가 내년 착수할 가칭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다. 사업명에서 드러나듯 전국의 농어촌 오지 격리 마을, 달동네, 쪽방촌 등 생활여건이 어려운 주거 취약지역이 대상이다.
달동네와 쪽방촌은 우리나라 현대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국가 발전 대의 아래 삶의 터전을 잃은 소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 형성된 동네가 달동네고, 작은 몸 하나 뉠 거처조차 없는 민초들이 방 하나를 쪽으로 나눠 살던 곳이 쪽방촌이다. 누군가에게는 민생의 괴로움이 투영된 낡은 건축물이고, 누군가에게는 고된 일상 속 새 희망의 꿈이 영글던 안식처다.
나도 기찻길 옆 쪽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쓰레기더미 옆 악취 속에 수도시설은 고사하고 화장실마저 불충분해 공동으로 써야 했던 기억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산업화 초기 우후죽순 생겨난 주거 취약지역은 국력 증강과 함께 체계적 도시정비 사업으로 상당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아직도 전국에는 1200여 농어촌 오지 격리마을이 있고, 도시에도 350여개 지역이 존재한다. 시설 붕괴나 화재, 자연재해 같은 위험요인에 그대로 방치된 건물들, 불결한 주거환경에 노출돼 건강을 위협받는 주민들, 화장실이나 상수도 같은 기초적인 생활시설도 구비되지 않은 집들이 전국 각지에 상존하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통해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이지만, 어려운 이웃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상대적 빈곤은 박탈감과 절망으로 이어지고, 결국 생에 대한 의지마저 포기하게 만든다.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해서야 어찌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 자신할 수 있겠는가.
내년부터 실시할 취약지역 개조 프로젝트는 전국 56개 생활권별로 취약지역을 선정, 부처 및 관할 지자체와 협업을 통해 전개된다. 고령자 공동홈 같은 공동시설 마련과 상하수도 확충, 소형 LPG저장소 설치, 슬레이트 지붕 개량, 재해 취약지대 보강 및 안전시설 설치 등이 우선 지원 대상이다. 지역발전위원회는 내년 550억원 규모의 사업의 생활권별 사업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연차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개별 사업의 진척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앞으로 주거 취약지역 주민들은 생활 여건 전반에 있어 보다 나은 공공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전국 어디서나 주민의 기본적 삶의 질을 보장하고, 생활 안전을 확보하며 건강과 위생 상태까지도 철저히 보호한다. 또 취약지역 주민의 자구적 노력과 발전의지 유발도 기대하고 있다.
“내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끔찍한 빈곤입니다.” 테레사 수녀의 말이다. 산업 발전의 이면에서 수십년을 견뎌온 농어촌 오지마을, 달동네와 쪽방촌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계 부처와 해당 지자체는 물론이고, 지역 주민과 기업, 국민 모두의 관심과 지원만이 답보 상태의 취약지역 생활여건을 개선하고, 보다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원종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장 yoleewj4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