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48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48회

6. 세상의 절반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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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는 호노리아 공주와 함께 첫날 밤을 보내고 있었다. 아틸라는 매우 정치적인 첫날 밤의 정치적인 신부인 호노리아가 팔을 힘껏 붙드는 것을 팽개치고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모르겠지만 로마와 훈이 하나가 되는 날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들이시죠.”

호노리아는 진짜 아내라도 된 듯이 참견을 했지만 아틸라는 호노리에게 눈길 한 번 안주고 벌써 마중 나가 있었다. 호노리아는 얼굴이 금새 벌개지며 입술을 콱 깨물었다. 세상의 절반을 들고 온 로마의 공주에게 허접한 대우였다.

에르낙이 들어섰다. 오늘따라 그의 눈빛은 티끌 하나없이 번쩍였다. 에르낙은 호노리아 공주를 슬쩍 쳐다보았다. 존경도 존엄도 없는 시선이었다. 호노리아 공주는 에르낙의 불길한 시선을 피했다.

아틸라가 손뼉을 탁탁 쳤다. 그러자 병사 하나가 들어섰다.

“공주를 다른 곳으로 모셔라.”

“뭐라고요? 아틸라.”

호노리아 공주는 거의 벗은 몸으로 일어나 함부로 대들었다. 첫날 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못갑니다. 어떤 여인도 이런 대우를 받지는 않을겁니다.”

“그럼, 나와 결혼을 포기하고 서로마로 돌아가시던지요.”

아틸라는 싸늘했다. 일체의 정서도 없었다. 호노리아 공주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손이 발발 떨었다.

“공주를 모셔라.”

“저는 옷부터 입어야겠습니다.”

호노리아 공주는 일부러 꾸물거렸다. 그러나 아틸라는 추상같았다.

“빨리 모셔라.”

병사는 호노리아 공주의 몸에 이불을 얼른 둘렀다. 그리고 옆에서 부축했다. 빨리 나가자는 재촉이었다. 호노리아가 투덜거리며 나가자마자 아틸라는 에르낙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에르낙이 밖을 향해 은밀히 말했다.

“들라.”

그러자 콧수염도 없는 아직 앳된 소년이 들어섰다. 한 눈에 봐도 목동의 차림새였다. 소년은 아틸라를 보자마자 엎드렸다.

“아틸라, 제..왕..님.”

아틸라가 짐짓 모른척 물었다.

“이 늦은 밤, 나의 첫날 밤을 방해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 믿고싶다.”

소년은 부랴부랴 자신의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아마 소년의 집에서는 최고급 옷감이었을거다. 소년은 옷감에서 칼을 하나 꺼내었다. 아, 황금보검이었다. 황금으로 만든 그 검은 불타는 빨간석류석과 로만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었고 태극문양까지 뚜렷했다. 놀라울 정도로 단단해 보였고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산에 오르다 바위와 바위 틈에 나무를 쌓아 놓은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살아온 그때부터 가장 오래된 전설의 검입니다. 이 검을 아틸라 제왕님께 바칩니다.”

소년은 칼을 들어 아틸라에게 바쳤다. 아틸라는 그 황금보검을 들었다. 아버지 문주크의 음성이 쨍쨍히 들렸다.

“우리는 대(大)중원을 거쳐 눈물의 연지산(燕支山)을 떠났으니 서쪽으로 서쪽으로 카스피해, 볼가강에서 다뉴브강을 지나며 슬라브족, 알란족, 스키리족, 게피타이족, 고트족, 트라키아족 등을 모두 제압할 것이다. 아틸라, 너는 그곳에서 멈추면 안된다. 게르만족을 떨쳐버리고 대(大) 로마제국을 페허로 만들라. 그리고 또 멈추면 안된다. 그곳에서 다시 동쪽으로 동쪽으로 너는 드디어 실라에 도착 할 것이다. 그곳이 바로 우리 부족을 데려갈 약속의 땅이다. 세상의 모든 땅을 정복하며 우리 훈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대제국의 제왕은 아틸라, 바로 너다. 네가 황금검의 주인이다.”

“드디어 내가 주인이다. 황금보검은 스스로의 역사와 비밀을 견디며 가장 위험한 족속의 제왕인 나에게 왔다. 내가 진짜 주인이다.”

아틸라는 황금보검을 높이 들었다. 찬란한 빛의 갈기가 아틸라를 감싸도 돌았다.

“이제 실라(Shilla)까지 가리라.”

어느덧 하늘에서 찬란한 빛줄기였다. 어느덧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신하들도 왕 눌지도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풍경에 말을 잃었다. 어린 자비가 누워있는 방은 온통 새로운 선계(仙界)를 보여주었다. 묵호자는 스스로 향을 피웠다. 한 번도 본 적도, 한 번도 내음을 맡을 적도 없는 고귀한 향은 어린 자비의 코끝을 통해 온 몸 구석구석에 전달되었다. 향은 모두의 마음의 결을 평화롭게 했다. 눌지는 중얼거렸다.

“처음 도착한 알지는 세한을 낳았고 세한은 아도를 낳았고 아도는 수류를 낳았고 수류는 육보를 낳았고 육보는 미추를 낳았다. 미추는 신라 김씨의 첫 반째 왕이시니, 오늘 그대 묵호자가 어린 자비를 살리니 신라는 드디어 김씨의 왕의 부자세습이 완성되는구나.”

왕 눌지는 방금 눈을 뜬 자비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아도부인도 눈물을 흘렸다. 치술공주도 눈물을 흘렸다.

어린 자비가 일어나고 어느덧 묵호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와 함께 어느덧 찬란한 빛의 갈기도 사라졌다. 어느덧 하늘에서 내리던 꽃비도 사라졌다.

“난 황금검을 찾을 것이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