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가 콘텐츠 수급에서 외주제작 콘텐츠 비중을 늘릴 예정이다.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공영방송 품질 저하에 따른 나름의 해결책인 것으로 보인다. 수신료에 걸맞는 콘텐츠가 나올 수 있도록 완전한 경쟁 환경을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5일 브로드캐스트에 따르면 BBC의 감독기구인 BBC트러스트는 현재 BBC가 보유한 사내 제작 비중을 재검토하기로 했으며 TV와 라디오 외주제작 비율을 늘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BBC는 2007년부터 내부 제작 비율을 50%로 한정하고, 독립 제작사에 총 편성시간의 25%를 할애하며, 나머지 25%를 내부 제작자와 독립제작사의 경쟁에 맡기는 방식을 차용해 왔다. BBC는 2011~2012년 총 편성시간의 39%를 외주로 편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BBC는 이제 ‘제한된 경쟁’이 아닌 완전 경쟁을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높은 품질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BBC트러스트는 2015년에 있을 권리갱신 협상에서 현실적인 제안을 할 예정이다. 내부 제작과 외주제작 등의 비율에 변화가 생기면 정부의 비준을 받는다.
앞서 민간 방송국 연합체인 ITV는 BBC의 사내 제작 권한을 폐지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매그너스 브룩 ITV 정책 및 규제부서 대표는 “BBC가 가능하다면 외주제작에 모든 할당량을 제공해 최고의 아이디어를 위한 최고의 경쟁을 이루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BBC트러스트의 방침에 일단 영국 독립제작사들은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BBC 라디오와 온라인도 개방할 수 있다는 발표가 이어지자 소규모 제작사들도 고양되고 있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BBC 편성에 들어가기 위해 선정적 콘텐츠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는 염려다. 경쟁을 강화한다고 해서 ‘방송에 고유한 창의성’이 높아질 리 없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상업적 압박에서 자유로웠던 BBC 특유의 제작문화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심각하다. 1980년대 보수당 정권에서 BBC 제작문화를 악화시켰던 존 버트 사장의 악몽을 재현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존 맥베이 독립방송협회(PACT) 정책최고위원장은 “외부 콘텐츠 비중이 5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내부 제작자들의 비중이 더 많이 보장돼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PACT는 외주제작 할당량 변동은 2016년 권리 갱신을 위해 필요하다고 전했다.
<유럽 국가별 외주제작 의무편성 비율 / 자료: 한국전파진흥연구원(2009년>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