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IT 빅뱅` 콘트롤타워가 없다...차세대 금융 大計 서둘러야

금융과 정보기술(IT)의 융·복합화로 ‘IT발 금융 빅뱅’이 예고되는 가운데 이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컨트롤타워가 없어 눈앞으로 다가온 신(新)금융시대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핀테크(Fintech)시대 대비론’이다.

2000년대 초 전자산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시점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소니를 제치고 글로벌 IT 최고기업 반열에 올랐다. 수십년간 제자리걸음만 해온 우리 금융산업도 금융과 IT의 융·복합화를 계기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 차원의 ‘금융 대계(大計)’를 새로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차세대 IT융·복합 금융산업에 대한 정부 및 관련 업계의 대응과 인식은 극히 소극적이다. 정책방향을 제시해야 할 금융위원회는 아직까지 핀테크나 새로운 금융IT 서비스를 육성 대상으로 둘 것인지, 어떻게 진흥할 것인지조차 방향을 잡지 못한 상태다. 최근에서야 ‘글로벌 금융, IT융합 트렌드’에 대한 연구용역에 착수한 상태다.

금융위는 특히 투자자 보호 관점의 규제 일변도 정책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금융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보거나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시도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차세대 국가 먹거리를 고민하는 미래창조과학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 타 부처 역시 ‘금융’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은행권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 금융회사는 수십년간 금융당국 눈치만 보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않았다”며 “금융 신기술이 나와도 복잡한 인허가 절차나 규제를 두려워하는 흐름이 반복돼 왔다”고 전했다.

아이디어로 무장한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도 금융업에 참여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새로운 사업모델은 인허가에만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이 사이 중소기업들은 사업을 포기하기 쉽다. 금융업은 또 엄격한 자본관리 규제를 받는다. 아이디어로 IT와 결합한 금융모델을 개발해도 영세한 벤처기업이라면 그 사업을 펼치기 쉽지 않다.

해외에서는 IT와 결합한 금융 신사업이 폭발적으로 확산 중이다. 글로벌 IT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이미 큰 흐름이다. 구글이 2011년 모바일 전자지갑 서비스 ‘구글 월렛’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해 이메일 기반의 송금 서비스를 추가했다. 애플은 최근 근거리무선통신(NFC)을 지원하는 전자결제 서비스 ‘애플 페이’를 발표했다. 아마존도 지난 6월 전자결제 서비스인 ‘아마존 페이먼트’를 선보였다. 중국의 대표 IT기업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두 모두 지급결제는 물론이고 온라인 머니마켓펀드(MMF), 소액대출 등의 금융서비스에 착수했다.

규제에 익숙해진 ‘보신주의’로 대변되는 우리 금융업도 이제는 ‘금융+IT 빅뱅’ 새 흐름을 타고 도약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표적 IT강국이다. 기존 시장질서가 깨지는 격변기는 위기이면서 기회도 제공한다. 다행스럽게도 해외 핀테크 붐은 아직 초기 단계다.

우선 금융회사와 금융 신기술 스타트업과의 연계와 투자, 금융사와 IT기업 간 업무제휴, 창조적 아이디어의 금융스타트업 육성 등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규제 일변도 금융정책을 육성과 사후 규제로 대전환해 새로운 시도를 늘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벤처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금융위부터 낡은 규제 일변도의 업무를 하루 빨리 진흥업무 위주로 바꿔가야 한다”며 “혹시나 발생할 문제는 사후규제로 대거 바꾸고 금융회사와 IT기업이 새로운 시도를 늘릴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휴대폰·조선 등 개방형 산업에서는 글로벌 강자로 꼽힌다. 반면에 유독 금융에서는 크게 뒤처져 있다. 세계경제포럼(WEF) 2014년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 금융시장 성숙도는 80위를 차지했다. 말라위(79위)·우간다(81위)와 유사한 수준이다. 은행 총자산이익률은 지난해 0.38%로 아시아에서도 최하위권이다. 지난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9개 외국계 금융사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들은 국내 금융업을 67.5점으로 평가했고, 64.2%가 한국 금융산업 최대 문제로 과도한 규제 및 정부 개입을 꼽았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